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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원장 이혜란)은 오는 3월 2일(목) 봄학기 한식강좌를 개강한다. 이번 강좌는 5월 18일(목)까지 매주 목요일, 총 10회 진행된다(공휴일 및 원내 행사일 제외). 한식강좌는 회차당 15인 내로 진행되며, 인당 최대 3회까지 신청 가능하다.   3월 한 달간은 ‘밥’을 주제로 강좌가 진행된다. 해당 강좌에서는 계란밥, 간장계란밥 등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배울 수 있다. 또한, 불닭치즈주먹밥과 같이 SNS상에서 유행하는 최신 메뉴 역시 해당 강좌에서 다루어질 예정이다.   4월, 5월에는 면과 국물 요리를 주제로 총 6회의 강좌가 진행된다. 면을 주제로 하는 강좌에서는 지금은 평소에도 쉽게 맛볼 수 있지만, 이전에는 혼인이나 회갑 등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던 잔치국수를 배울 수 있다. 또한, 잔치국수에 어울리는 겉절이, 비빔국수에 어울리는 오이초무침 등 주메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반찬 레시피도 함께 배워 더욱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번 한식강좌는 실제 한국인들이 작성한 레시피를 바탕으로, 현지의 숙련된 요리사를 강사로 초빙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강좌를 듣는 이들은 개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레시피를 전문 요리사와 함께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배울 수 있다. 한식의 기본적 이해부터 트렌드 파악까지   이번 봄학기 한식강좌는 단순한 수업을 넘어, 한식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강좌의 테마인 밥, 면, 국물은 모두 한식의 중요한 주재료 및 조리법으로, 수업을 통해 한식의 기본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찬 문화는 외국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이는 주메뉴인 잔치국수에 겉절이를 반찬으로 곁들이는 방식을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한식의 기본 개념을 넘어 최신 트렌드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흔히 떠올리는 한식으로는 비빔밥, 김치, 불고기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전통음식으로서 해외에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한식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음식을 알릴 필요가 있는데, SNS가 발달한 한국의 특성상,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메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강좌에서 다루는 간장비빔국수 등의 메뉴는 한식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동시에 한식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이혜란 원장은 ‘이번 한식강좌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음식과 더불어, 실제 한국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다루게 된다. 이번 강좌를 통해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한식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4, 5월 강좌 신청자 모집 공지는 문화원 홈페이지 및 SNS를 통해 게시될 예정이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홈페이지와 SNS를 방문해주시길 바란다. 일시 : 2023년 3월 2일 - 5월 18일(매주 목요일, 공휴일 및 원내 행사일 제외) 참여대상 : 2023 봄학기 한식강좌 신청자

  (서울=월드코리안신문) 이석호 기자  = 외교부 산하에 재외동포청을 신설하고,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인 국가보훈부 로 격상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월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가 정부에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지만, 여야가 합의를 보지 못해 여성가족부는 그대로 존치된다.   732만 재외동포를 지원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재외동포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신설하는 재외동포청은 외교부의 재외동포 정책기능과 재외동포재단의 사업기능을 이관받는다. 재외동포청은 영사, 법무, 병무 업무도 함께 처리하고 재외동포·단체 교류 협력, 네트워크 활성화, 차세대 동포교육, 문화홍보 관련 사업도 하게 된다. 재외동포청 청장은 차관급이다.   앞서 지난 2월 14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원장으로 구성된 ‘3+3 정책협의체’는 행안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고 국가보훈부, 재외동포청에 대해서 이견 없이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개정안이 의결되고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에,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 4개월 만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재외동포청 신설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연 재외동포 초청 행사와 해외 동포간담회에서도 재외동포청 신설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통과한 정부조직법은 공포 후 3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오는 6월쯤 재외동포청과 국가보훈부가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순 시인 ‘민족의 장군 홍범도’ 순국 80주기 맞아 일대기 출간   대한독립군과 일본군의 결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1920년 10월 어느 날 백두산 부근 산악지대 청산리 근처. 대한독립군을 포함한 연합부대가 모여 긴급 작전회의를 연다. 이전까지는 방어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상황. 부대 지휘를 총괄했던 홍범도 장군(1868∼1943)은 “청산리 부근의 유리한 지세를 이용해 적의 선두부대를 기습 공격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그의 주장이 채택됐고, 독립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다.   홍 장군 순국 80주기를 맞아 이동순 시인(73)이 1일 출간하는 ‘민족의 장군 홍범도’(한길사)의 한 대목이다. 1982년부터 홍 장군과 관련된 사료를 모아 온 이 시인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41년 만에 마침내 홍 장군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은 이 책을 그의 묘소에 바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840쪽에 이르는 이 책은 홍 장군의 출생부터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에서 눈을 감기까지의 일생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일대기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 시인은 할아버지인 독립지사 이명균 선생(1863∼1923)의 삶을 전해 들으며 “언젠가 조부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삶을 문학으로 엮어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목한 인물이 바로 홍 장군. 이 시인은 “홍 장군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남긴 족적을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다”고 했다.   이 시인은 ‘홍범도 일지’(홍 장군이 카자흐스탄에 살아 있을 때 고려극장 소속 극작가가 기록한 구술 채록집)에 드러난 홍 장군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 1∼10권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20년 만에 산문으로 홍 장군의 생애를 다시 써내려간 이유에 대해 “단순 사실의 조합은 생애를 평면화하기 쉽다. 홍 장군의 생애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입체화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이어 “홍 장군에 대한 새로운 사료들이 추가로 밝혀진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써내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920년 청산리 전투 이후 연해주에 살던 홍 장군은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했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 안치돼 있던 홍 장군의 유해는 순국 78주년인 2021년 광복절 고국으로 돌아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돼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1937년 스탈린 강제 이주 당시 기근 속에서도 환대 고려인들은 크질오르다 개간하며 ‘번영과 풍요 일궈 김유리 헌법위원회위원장 등 정‧관‧재계에서 맹활약 지난  27일, 카자흐스탄국립도서관에서 열린 고려일보 100주년 기념전시 개막식 <카자흐인들은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에게 빵을 건네며 포용했다. 그 덕분에 고려인들은 낯선땅에서도 잘 정착할 수 있었고 고려일보, 고려극장, 고려말  라디오  등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2023.2.27 almatykim67@yna.co.kr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정착한 이 땅에서 더욱 큰 감회로 104주년 삼일절을 맞고 있다. 2023년 3월 1일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한 3.1봉기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3.1운동’에는 이 역사적 사건을 다 담아낼 수 없어서 ‘3.1봉기’라고 표현한다)   104년 전 이날 우리 겨레는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극악무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조선의 자주독립을 외쳤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이후 3개월간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된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106만여 명이고, 그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7000여 명이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려일보는 당시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행되고 있었는데, 조선의 218개군 중에서 211개 군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약 200만 명이 참가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일보에 따르면, 석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든 독립의 함성은 일제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잔학하게 진압되어 조선 땅은 애국지사들의 피로 물들었다. 8000명이 피살되었으며 약 1만6000명이 부상을 당했고 5만2000명이 감옥에 갇혔다.   조선에서 일어난 3.1봉기의 메아리는 10만여 명의 동포들이 살고 있는 두만강 건너 연해주에서 울려 퍼졌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니꼴스크-우수리스크, 스빠스크를 비롯해서 동포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3.1봉기에 동조하는 시위행진과 군중집회가 진행됐다. 여기에는 연해주 동포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 중국인 그리고 기타 소수민족 대표자들도 적극 참여했다.   일례로 1919년 3월 18일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일제식민주의자들을 반대하고 조선독립을 외치는 대중적 시위운동이 진행되었고 '독립선언서'가 일본영사관구내에 뿌려졌다. 이를 목격한 러시아인 야로멘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은 태극기와 붉은기로 장식되었다. 조선인의 시위는 신한촌에서 시작하여 시내 중심으로 행했다. 자동차를 탄 사람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뿌렸다. 시위 운동 참가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조선의 청년들이었지만 러시아인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조선 대표단은 러시아어, 영어, 조선어와 중국어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외국 영사관에 뿌렸고 왜놈들은 '독립선언서'가 눈에 띄면 그것을 뜯어 찢어버렸다.”   조선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간도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대중적 시위와 군중집회가 진행되었다. 러시아의 경우 10월 혁명(1917년)과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조선의 땅과 자주독립을 빼앗아갔으며 조선의 우수한 아들들을 사형시키거나 감옥에 가둔 일본강도들과 벌써 15년동안 싸우고 있다” 고 실상을 전하면서 “조선의 항일독립군이 소련의 붉은 군대와 함께 행동할 때 왜놈들을 블라디보스톡과 조선에서 쫒아낼 수 있다”고 단합을 호소하였다.   이때 연해주에 살고있는 동포들은 이미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기 구매를 위한 자금을 모으고 있었고, 국경 부근지역에서는 일제 침략자들에게 큰 타격을 준 조선인 빠르티잔 부대들이 조직되었다. 항일 빠르티잔부대들은 일본수비대를 공격하여 무기를 노획했고, 철도 교통 연락을 마비시켜 일제의 군부대가 3.1봉기를 진압하는데 출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3.1봉기 1주년에 즈음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고 당시 출판물에는 “3월 1일은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국경일이다”라고까지 했다. 1920년 3월 1일 하바롭스크, 니꼴스크-우수리스크 및 기타 동포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조선독립을 위한 시위가 있었고, 동포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함께 참가했다.   언론도 호응했다. ‘쁘라브다’, ‘이즈베스찌야’, ‘에호’ 및 당시 연해주에서 발행되던 동포신문들인 ‘로농신보’, ‘경종’, ‘로동자’ 등의 신문들이 자유와 독립을 위한 조선인들의 투쟁에 관해 기사를 쏟아냈다. 1926년 3월 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군중 집회에서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1919년 3월 1일에 휘날린 조선인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기치를 승리의 날까지 들고 나가리라 굳게 확신한다”는 연설이 나왔다.   요컨대, 3.1봉기는 자주독립을 향한 온 겨레의 뜨거운 피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자주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게 만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래서 삼일절은 우리만의 민족 기념일이 아니라 재외동포가 사는 이웃 나라들에서도 그 나라 주민들과 함께 경축하는 국제적인 명절이 되었다. 카자흐에서는 ‘감사의 날’   카자흐스탄 대통령 직속 기구인 ‘민족회의’는 2016년, 국가전략문제연구소에서 회의를 갖고 3월 1일을 ‘감사의 날’로 지정했다. 민족회의 소속 위원들과 카자흐스탄 내 소수민족 대표들뿐만 아니라 의장인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130여 민족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국경일로 지정한다”고 결의한 것이다.   이날이 이 땅에 사는 우리들(고려인)에게는 삼일절과 함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국경일로 다가오는 이유는 1937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거의 1만km에 이르는 거리를 강제 이주당한 우리(고려인)에게 빵을 건넨 이들이 바로 이 땅에 살던 카자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카자흐초원에 몰아친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자신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데,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실려 온 우리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의 부모들은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시리다리야 강물을 끌어들여 반사막 기후인 카자흐 땅을 황금빛 벼 이삭이 넘실대는 옥토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 화답했다. 고려인 꼴호즈들은 수많은 사회주의 노동영웅을 탄생시키면서 국가의 계획생산량을 초과 달성했다. 흐루시초프 당서기장 시절, 서방의 대표단에게 단골로 보여주었던 농장이 바로 고려인들의 피땀으로 만든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던 선봉(아방가르드) 꼴호즈였다.   이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이 독립된 후 신생국 카자흐스탄의 국가기반을 닦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다시 한번 화답했다. 김유리 헌법위원회위원장은 카자흐스탄의 헌법의 기초를 닦았고, 김 블라지미르 카작므스회장은 적자에 시달리던 구리 콤비나트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었고 런던 증권시장에 상장까지 시켰다.   채유리 카스피언 그룹회장(전 상원의원)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고, 김 베체슬라브 카스피은행 회장은 카자흐스탄의 금융산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일조했다. 김 에두아르드 테크노 돔 회장과 남 올렉 쿠아트건설 회장은 카자흐스탄의 가전유통업과 건설업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이외에도 카자흐스탄의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과 과학, 의학분야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모국과의 관계를 통해 카자흐스탄 공연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한류 확산의 선봉장이 된 고려극장과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보건부 장관으로 활약한 최 알렉세이를 꼽을 수 있다.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카자흐스탄의 상위 50위 부자명단에 8명의 고려인들이 포함되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1937년 강제 이주의 굶주림에 지친 우리에게 빵을 건네던 카자흐인들의 그 따뜻한 마음은 오늘날 평화와 화합의 민족정책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인들의 성공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삼일절이면서 ‘감사의 날’로써 한국과 카자흐스탄에서 동시에 국경일이 되는 3월 1일, 올해는 선조들의 항일 독립정신과 함께 고려인들을 품어준 카자흐초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그 어느 해보다 진하게 가지는 해가 될 것 같다.

고려극장에서 열린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행사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26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에서 열린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고려극장 배우들이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겨레의 염원을 담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23.2.26 almatykim67@yna.co.kr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제104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회장 신유리)와 독립유공자후손회(회장 박 타티아나)가 코로나19 여파로 중단했던 기념행사를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카자흐스탄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에서 26일(현지시간) 열린 기념행사는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기억을 담은 특별영상 시청과 어린이 독립유공자후손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겨레의 염원을 담은 고려극장의 공연, 어린이 가무단 '남성'이 준비한 '내 나라' 공연에 이어 독립운동가 김학만의 후손 김 빅토르 선생의 선창에 따른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고려극장이 유관순 열사와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대화 형식을 빌어 3.1운동의 의미와 실상을 부각시키는 공연을 선보이자 객석의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박타티아나 독립유공자후손회장(자손재단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고려인협회와 고려극장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인해 행사가 잘 진행됐다"면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활동을 후대들과 함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신유리 고려인협회장은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은 4년 뒤 3월 1일에 '삼월일일'이라는 이름의 신문을 탄생시켰다"면서 "연해주에서 창간된 이 신문의 창간호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이 실렸고 이후 고려인들의 고난과 영광의 역사를 100년 동안 기록한 고려일보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알마티총영사관 박내천 총영사는 "카자흐스탄은 해외 어느 곳보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생을 마치셨고 또 후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라며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예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위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는 독립운동가인 최재형, 이동휘, 계봉우, 민긍호, 김경천, 오성묵, 황경섭,황운정, 최계립 등의 후손 550명이 살고 있다. almatykim67@yna.co.kr

카자흐서 창간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개막 고려일보 독자의 육필 편지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고려일보'문예주임 양원식 동무 앞 이라는 제목의 독자 육필 편지. 양원식은 문예주임으로 일하며 타향에서의 외로움과 고향산천에 대한 향수를 시와 글로 표현했고 한-소 수교 후 기자들이 한국기업의 통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신문사를 지키다 2006년에 운명했다. 2023. 2. 27 almatykim67@yna.co.kr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한반도 밖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글신문인 '고려일보'의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카자흐스탄에서 개막했다.   고려일보사와 카자흐스탄국립도서관은 27일(현지시간) 알마티에 있는 카자흐스탄국립도서관 특별전시실에서 100주년 기념 기획전시 '선봉, 레닌기치, 고려일보의 100년' 막을 올렸다.   이날 개막식에는 신유리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장과 박내천 주알마티총영사를 비롯해 카자흐스탄내 소수민족신문사 주필들과 고려일보의 원로기자들이 초청됐다.   전시를 주관한 오스빠노바 바크트쟈말 카자흐스탄국립도서관장은 "고려인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고려일보의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고려일보의 업적을 적은 기념패를 김콘스탄틴 총주필에게 증정했다.   바크트쟈말 관장은 "강제이주 후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일보는 2차대전 소식과 꼴호즈(집단농장)의 모습, 카자흐스탄의 독립과정까지 세밀히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신유리 고려인협회장은 "100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삼월일일'이라는 이름으로 창간된 이 신문은 고려인 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면서 "일제의 압제를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3·1운동 4주년인 1923년 3월 1일에 창간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이후에도 신문발행은 이어져 고려인들의 고난과 영광의 역사를 함께 하며 오늘 영광스러운 100주년을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김 콘스탄틴 총주필은 "전세계 어디에나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있지만 100년 동안 신문발행을 이어온 곳은 없다"면서 "우리의 말과 문화를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 애쓴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고려인 사회의 원로를 대표한 박이반(93) 박사는 "이 신문이 100년을 이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할 때 한글활자를 가져와 신문 발행을 가능케 한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로 100주년을 맞는 소회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1923년 3월 1일에 창간된 고려일보의 전신 '삼월일일'의 창간호 영인본과 소련 당국이 민족간 화합에 기여한 공로로 고려일보에 수여한 훈장, 1937년에 발행된 '선봉' 신문, '레닌기치'와 '고려일보' 신문 원본, 소련시절 기자증, 기록 사진들이 전시됐다.   고려일보는 1923년 3월 1일 '삼월일일'이라는 제호로 창간되어 '선봉'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다가 강제이주 후 '레닌의 영도'라는 의미를 지닌 '레닌기치'라는 제호로 고려인들의 생활상, 농업기술, 소련의 국가정책, 국제소식 등을 전해왔다. 이 신문은 문예면을 통해 한글문학이 면면히 이어져 오는 데에도 기여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1991년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꾼 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신문으로 지위를 바꿨으나 곧 이은 소련 해체와 카자흐스탄의 독립, 시장경제 체제로의 급격한 전환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 1월 1일 부터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발행처 겸 운영 주체를 맡았고, 카자흐스탄 정부와 재외동포재단도 일부 지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3월 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은 무료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와 고려일보사는 2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전체 언론사를 대상으로 '고려일보 100주년의 해' 선포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카자흐스탄과 한국에서 연중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오는 10월에는 알마티에서 100주년 공식 기념행사를 연다. 한국에서는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100주년 기념식을 치를 예정이다.   almatykim6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