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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0주년 축사]  고려일보 100년은 ‘고려인의 역사’ 그 자체

김상욱 (고려문화원장/한-카자흐 친선대사)

<100년 전 창간호. 당시의 제호는 ‘삼월일일’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장례식은 1943년 10월 27일 하오 4시에 거행한다는 부고가 실려있다.>

<소련 최고 소비에트는 고려일보사에  ‘민족우호훈장’을 전수했다>

  고려인 동포사회의 구심점이자 등대의 역할을 해 온 고려일보의 창간 ㄹ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려일보 100년의 역사는 고향 땅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온 고려인들의 역사 그 자체이자 조국의 자주독립의 꿈을 안고 연해주로 향했던 항일독립지사들의 꿈과 헌신이 녹아 있는 신문입니다 

  다시 한번 모든 고려인동포들과 전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재외동포언론인들의 마음까지 모아서 진심으로 뜨겁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100주년을 맞는 오늘, 저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솟움 치는 감동의 물결과 함께 잊지 못할 얼굴들이 스쳐지나갑니다.

  95년이었습니다. 질료늬 바자르 맞은편에서 위치했던 고려일보 편집국으로 첫 출근을 했었습니다. 고려일보 100년의 역사중에서 소련해체와 시장경제로 체제전환으로 인해 혼란스럽던 90년대는 재정난과 한글독자의 감소, 한글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의 고갈이라는 삼중고에 처해 있을 때여서 창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때였습니다. 이때 편집국을 지킨 원로기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얼굴은 ‘삼월일일’이라는 제호로 고려일보 창간호를 인쇄하던 창간 주역들입니다. 이들은 항일독립운동과 연해주 동포들의 구제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또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황동훈 농업부장과 채자공들입니다. 1937년 강제이주 명령이 내려지기 전, 대부분의 편집국 기자들의 스탈린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다행히 탄압을 피한 이들은 그 와중에도 한글활자를 챙겼고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이주된 뒤 불과 6개월만인 5월15일에 신문이 재발행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선봉시절, 신문의 지속적 발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노농통신기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편집국으로 보내주었던 시민기자이자 독자이자 신문영업직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헌신이야 말로 어려웠던 선봉시절을 버터낸  큰 힘이었습니다.

  100년 역사의 고려일보가 있게 된 것은 이외에도 수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보태졌습니다. 70년대에 접어들어 모국어 사용자가 줄어들자 사할린 출신 모국어 소유자들이 편집국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80년대에 신문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수료한 이후에는 한국에서 투입된 인력과 지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려일보를 구독해준 고려인 동포들과 편집국 그리고 2000년 이후 부터 고려일보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고려인협회에게 100주년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또한 고맙습니다.

  고려일보는 동포들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100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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