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기획 : 우리는 고려사람이오 – 4]
고려인들은 평소 어떤 음식을 먹을까요? 1
김상욱 알마티고려문화원장
고려인들은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요? 알마티와 누르술탄, 크즐오르다, 우슈토베, 아티라우 등 카자흐스탄의 여러도시에 사는 고려인들의 생활문화 중 특히 식문화를 살펴보면 우리 고유의 전통식문화가 많이 보존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해주 시절부터 받아들인 러시아식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이주 후에는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음식도 받아들여 우리 음식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소 수교와 함께 물밀듯이 들어온 한국의 사업가와 유학생 그리고 개신교 선교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식문화도 섭취하여 자신들이 현재까지 구성해 온 문화에 접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고려인들의 식문화가 이 지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음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만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알마티 뿐만 아니라 크즐오르다, 우쉬토베, 심지어 카스피해의 석유도시 아티라우를 가더라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러시아인들이나 카자흐인들이 일상음식 속에 우리 전통 음식이 발견되는 것을 통해 고려인들이야 말로 음식 한류의 선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상적으로 식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부엌이고 이 공간은 식탁과 의자 그리고 주부가 요리하는 조리대와 개수대 그리고 각종 주방용품과 요리도구를 넣어두는 부엌가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박한 부엌가구와 함께 딱 필요한 주방도구, 적당한 식자재로 채워진 부엌은 대체로 정갈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알마티의 경우 부엌은 9~12평방미터가 일반적이고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경우 12평방미터 이상의 넓직한 부엌에서 조리와 식사가 이루어집니다. 부엌과 거실이 연결되어 있는 한국식 아파트 구조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볼 때에는 9평방미터, 즉 가로 세로 3미터로 이루어진 공간은 무척 좁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발콘(‘발코니’)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이곳에 음식이나 식자재 또는 물건들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부엌은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가까운 친구나 자주 찾는 손님 접대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알마티를 벗어나 지방으로 가보면 일반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면,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 지역의 고려인들은 대부분 일반 주택에 거주하고 이중에서 일부 고려인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같이 앉은뱅이 상에 음식을 차리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서 먹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났군요. 2017년, KBS의 인기 예능프로인 ‘1박2일’ 촬영팀들이 왔을 때 방문했던 우쉬토베 따찌아나 할머니 댁이 그런 경우입니다. 다만, 밥상이 우리나라 것 보다 약간 높으며 높이 20~30cm정도의 낮은 나무의자(목도장) 위에 앉습니다. 책상다리 또는 양반다리 자세로 앉는 것은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고려인 가정에는 이런 나무 의자가 여러 개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하루에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을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알마티 지역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식 고기스프에 해당되는 ‘보르쉬 ’에 빵을 먹거나 ‘보르쉬’를 국 삼아 밥과 마르꼬프채 를 먹는 가정이 많습니다. 우쉬토베 지역의 고려인들은 전통적인 아침식사 즉, 흰쌀밥에 국과 배챠짐치(배추김치) 나 마르꼬프채(당근채)를 준비합니다. 국은 주로 전날 저녁에 먹은 ‘북자이(된장찌개) ’ 를 데우거나 양배추와 고기를 썰어 놓고 끓인 ‘보르쉬’를 먹습니다.
주부는 주로 하루 세끼 먹을 양의 ‘보르쉬’(러시아식의 국)를 준비합니다. 이것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감자, 양배추, 양파, 파, 마르꼬피(당근), 불고치, 우크롭, 토마토를 넣어서 끓인 국인데 만들어 두었다가 몇일 계속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세끼의 음식 종류가 크게 변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체로 아침에 준비하였던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계속해서 먹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상에 준비된 음식의 종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밥, 김치, 토마토 썬 것, 바우르사끼 (카자흐 전통빵의 한 종류), 자이(된장) , 고추, 왜(외이) , 가지채 등이 상위에 오릅니다.
고려인들은 ‘마르꼬프채(당근채)’나 주로 양배추로 만든 ‘배챠짐치(배추김치)’ 를 먹습니다. 국이 있음에도 밥을 말아먹지 않습니다. ‘바비무리(밥이물이:물밥) ’ 을 즐기는데 밥을 물에 말아서 먹거나 밥을 한숟갈씩 떠서 물에 적셔 먹습니다. 저도 어릴 적 한여름 대청마루에서 할머니와 함께 찬물에 밥을 말아 먹고 맨고추장을 반찬 대신 찍어 먹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려인 최초 정착지이자 농촌지역이라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많이 보존된 우쉬토베이지만 젊은 부부들의 경우나 장년층 가정이라도 집안에 노인이 거주하지 않는 경우에는 아침식사는 위와 같이 밥과 국, 김치로 구성되지 않고 뜨거운 차이와 블리늬 또는 보르쉐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합니다. 블리늬는 계란과 우유 등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것인데, 주로 다양한 과일 쨈을 발라서 먹는 러시아식 아침입니다. 직육면체 모양의 흘렙은 벽돌과 유사하게 생겼다고 해서 벽돌빵이라고 불리우는데, 이것을 먹을 때는 칼로 잘라서 버터를 발라서 먹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