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젊은이들, 한류 열풍에 빠지다!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매우 호의적이다. 135개 민족이 서로 다른 민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다양함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 가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은 “K-Pop”을 카피하여 “Q – Pop(Qazaq -Pop)”을 만들어 내었다. “ Q-Pop”이야말로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카자흐 민족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리하고 지혜로운 카자흐스탄 젊은 세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이들의 한류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까지 와 있으며 그 사랑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카자흐스탄 한류의 선봉장 한국 드라마
200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 현지 공중파방송에 올인, 대장금, 주몽, 겨울연가, 가을동화 등의 한국 드라마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현지 라디오 방송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올인의 주제가가 흘러나와 알마티 어딜 가든 하루 종일 들렸다. 특히 쭘(백화점)앞의 아르바뜨 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LG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무리를 지어 올인 주제가를 불렀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겨울 연가를 보며 눈물을 훔쳤고, 대장금의 한식을 맛보고 싶어 주말이면 한식당을 찾았다.
한국드라마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은 작품은 주몽이다.
8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주몽”이 현지서 방영되는 날은 알마티 시내에 지나가는 차도, 행인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유목민의 후예인 카자흐스탄인들이 광활한 북만주 벌판을 말달리던 고구려 주몽에게 매료 된 것일까? 한국드라마 주몽은 카자흐스탄 국민드라마로 등극했고, 종영되어서도 그 인기는 쉬이 식을 줄 몰랐다.
주몽 종영 후 지난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의 한국의 해”를 기념해 열린 “한국주간” 행사에 초청된 배우 송일국씨 팬들이 한꺼번에 돌진하는 바람에 행사장 문이 부서져버린 사건도 있었다. 새로 건설된 도시 아스타나(현 수도 누루술탄)에 세워진 새 콘서트 홀 입구 문이 주몽 팬들의 열기로 무너졌던 것이다. 이날 행사가 열렸던 “카자흐스탄 센트럴 콘서트 홀”의 3500명 좌석은 만석이었고, 1,2,3층 복도까지 빈틈없이 가득 찼으며, 안타깝게도 1500여명이 넘는 팬들은 입장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같이 한류의 폭발적 인기를 가져온 드라마 주몽은 이후 2020년 ‘아스타나 TV’에서 재 방영되어 또다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류 드라마로 인정받고 있다
한류 드라마 열혈 시청자 21살 아루잔의 하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마무리된다. 요즘은 드라마에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OST를 따라 부르는 일도 빠질 수 없는 일과이다. 그녀의 방은 좋아하는 한국드라마 속 주인공 배우들의 포스터와 사진으로 가득하다. 아루잔 방 정면 벽에 송일국, 왼쪽 벽은 박서준, 오른쪽 벽에는 조인성,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서 박보검이 아루잔에게 웃음을 보낸다. 그녀의 꿈은 배우 박보검 같이 멋진 한국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한국에서 사는 것이다. 과연 아루잔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지???
카자흐스탄에 한류의 씨를 뿌린 고려인 동포들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하기 이전 까지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으로 묶여 있으면서 러시아 문화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정치, 경제 분야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막대하던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러시아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일상적으로 시청한다.
그러나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처음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에게 러시아 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동경의 대상이 등장했다. 바로 한국문화 “한류’이다.
고려인동포들이 함께 모여 김치 담그기 행사를 하는 모습
짐치(김치), 고려국시(국수), 마르코프채(당근 김치), 감자 배고자(고려식 만두), 뒤비(두부), 질금채(콩나물무침), 찰떡, 증편, 순대….,
카자흐인들이 한류드라마 대장금을 보기 전 이미 즐겨먹던 고려음식들이다. 고려인 동포들이 어머니의 김치가 그리워 배추대신 당근으로 김치 흉내를 내어 만들었던 마르코프채(당근 김치)는 카자흐스탄 식당 어디서나 메뉴에 당당히 올라 있다.
이처럼 한류가 이 땅에 소개되기 전부터 카자흐스탄인들은 고려음식을 즐겨 먹었고, 고려인 친구와 이웃을 통해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씨를 활활 뿌려라, 싸를 활활 뿌려라 ~~”
고려인동포들이 이 땅에 정착해 맨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잊지 않고 부르던 고국의 노동요이다. 고려인 최초 정착지인 우슈토베에서는 다른 민족 이웃들도 빵에 된장을 발라먹었으며, 이 노동요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국어 노동요를 따라 부르는 카자흐스탄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진다. 고려인 동포들은 이 땅에 생존을 위한 볍씨만 활활 뿌린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뒤 오게 될 한류의 씨앗도 활활 뿌렸던 것이다.
K-Pop에 빠져드는 카자흐스탄 젊은 세대
“샤이니, 빅뱅 브로마이드 한 장만 사다 주세요, 빠잘루스따(제발)!”
“저는 동방신기요!”, “저도요, 저도요!!” 교실 여기저기서 주문이 마구 밀려들었다 십여 년 전 필자가 재직하던 알마티의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어학과 한 교실의 여름방학을 몇 일 앞둔 어느 하루 풍경이다. 방학이면 한국인 선생님이 고국 방문을 한다는 정보는 소리 없이 다른 학년에게도 퍼져 갔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 교실 앞에는 고개를 빼곰히 내밀고 부끄러운 눈빛으로 소녀시대, EXO, 슈퍼주니어…..의 사진을 부탁하는 다른 학년 학생들로 붐볐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마티 한국 상품점에는 다양한 K-Pop 아이돌 그룹의 사진, 스티커, 굳즈등이 판매되기 시작했고 나는 방학 숙제로부터 해방 되었다.
이후 카자흐스탄 통신산업의 발전으로 카작텔레콤의 인터넷 전용선인 “메가라인”의 보급이 일반화 되면서 K-Pop은 빛의 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카자흐 젊은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 가요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춤을 따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K-POP 플레시몹’ 에 참여한 카자흐스탄의 K-POP 팬들 ⓒ Юлия Хан & kodra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고리끼 공원, 아르바트거리, 대통령 공원 앞에 가면 헐렁한 힙합바지에 운동화, K-Pop 티셔츠차림의 복장을 한 10대들이 K-Pop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춤 추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알마티의 K-Pop 동우회 팬들이다. 이들은 팬클럽 유튜브 공식채널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데, 때로는 수십 명이 모여 한국 아이 돌 그룹의 노래에 맞춰 대규모 플레시몹을 펼친다. 노래를 미리 선곡해 회원들에게 공지하고 안무 영상을 팬클럽 유튜브 공식채널에 올려서 회원들이 각자 집에서 미리 연습 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한 젊은 세대 층의 소통은 K-Pop 팬 클럽을 만들고 함께 열광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K-Pop 동우회를 중심으로 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한 K-Pop은 파급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19살의 아이다나는 자신 있게 본인을 방탄소년단 아미라고 소개한다.
“제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고 삶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BTS의 노래로 매일매일이 행복해요! ”
아이다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BTS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동영상을 보며 노래와 춤을 연습한다. 그녀는 동우회의 커버댄스 모임이나 플래시몸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 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모아 BTS굳즈 수집에도 열성이다. 물론 방탄을 만나러 한국을 가기 위해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
카자흐 젊은이들 K-Pop을 넘어 Q-Pop을 노래하다!
K-Pop의 인기가 계속하여 치솟는 가운데, 카자흐스탄에서는 K-Pop에 영향을 받은 카자흐스탄식 대중음악이 등장했다. K-Pop의 카자흐스탄 버전 Q-Pop(Qazaq Pop)이다
Q-pop boy band Ninety One [JUZ ENTERTAINMENT]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의 K-Pop사랑은 Q-Pop(Qazaq Pop)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문화 영역을 만들었다. Q-Pop그룹은 한국 아이 돌과 같은 가창력과 춤 실력을 겸비한 미소년을 내세워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에게 카자흐적 정서를 호소 하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대표적 Q-Pop그룹으로 Ninety one, Mad men, New ton, Ziruza, Moonlight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Ninety one의 인기가 가장 높다.
카자흐스탄의 보이 밴드 Ninety One은 2014년 데뷔했다. 그룹의 이름 Ninety one은 카자흐스탄이 소비에트연방(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을 의미한다. Ninety one은 이름에서도 보여지듯이 이들은 독립, 해방등의 메시지를 내세우며 러시아어가 아닌 카자흐어로 된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 그룹은 한국 아이 돌 그룹의 이미지에 카자흐스탄 적인 특징을 절묘하게 혼합한 영리한 컨셉으로 카자흐스탄 젊은 층을 열광 시킨다. Ninety one의 맴버 5명은 긴머리에 아이라이너가 짙은 화장과 스키니 진, 화려한 의상으로 중성적 매력을 어필하는데, 이는 기존 카자흐스탄 대중가수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이미지다. 힘이 넘치는 남성상을 선호하는 카자흐스탄에서 Ninety one의 이미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컨셉이었으나, 한국 K-Pop에 빠진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은 Q-Pop의 Ninety one에도 빠져들었다.
한국의 K-Pop은 카자흐스탄의 Q-Pop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이를 새로운 청년 대중문화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대중문화의 영역을 넘어 생활 속에 자리잡은 카자흐스탄의 한류
한국드라마를 시청하고 K-Pop, Q-Pop 노래와 춤을 추는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에게 한국어 공부는 필수과목처럼 여겨진다. 알마티나 누루술탄 도시를 걷다 우연히 만나는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이 “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안녕하세요?” 라고 반가이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젊은 카자흐 세대의 친화력과 오픈 마인드에 놀라고 한국어 실력에 놀라게 되는 경험이다.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아요?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라는 질문에 “한국문화원에 다녀요, 학교에서 배워요, 한국교육원 수강생이에요, 유튜브로 혼자 배웠어요!” 등의 대답을 들려준다. 카자흐스탄에서는 14개 대학과 64개 초, 중, 고등학교에서 약 800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수도 누루술탄의 한국문화원, 알마티의 한국교육원에서 한국어 강좌를 봄, 가을 각 15주씩 진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한국어학 및 한국학 규모는 독립국가연합(CIS)내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크다.
한류 드라마와 K-Pop사랑은 카자흐스탄 젊은 층의 한국어 학습으로 연결되어 한국 유학도 관심이 높아졌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단기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대학 대학원 자비 진학, 혹은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젊은이들 한국의 팻션을 카작에 들여오고 있다. 카자흐스탄 대형 쇼핑몰 한국 화장품 판매 코너는 언제나 절은 여성들로 붐빈다. 때문에 유창한 한국어에 한국 스타일의 옷차림과 화장을 한 카자흐 젊은이들은 한국인인 줄 착각할 정도로 한국인스럽다.
이처럼 한국 화장품으로 치장하고 한국브랜드 옷과 신발 가방으로 꾸미고 방탄 소년단의 K-Pop노래를 따라 부르며, 서울 홍대 앞에서 먹던 로제떡볶이, 마약떡볶이를 그리워하는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그들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이제 카자흐스탄에서 한류는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K-Pop에 열광할수록 Q-Pop도 함께 더욱 더 사랑할 것이고, K-Pop, Q-Pop을 넘어서는 카자흐 젊은 세대의 또 다른 대중문화가 창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