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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 한국전통무용가 [2023 노마드패션 월드페스티벌 위원회 제공]  공연기획자이자 한국전통무용가인 한지윤(44)씨가 키르기스스탄의 문화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고 동포매체인 '한인일보'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문화예술소통을 위한 아리랑풍류로드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던 한지윤씨는 다년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예술가와 한국의 예술가들의 공동창작활동을 주선해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2023 노마드패션 월드페스티벌'에 참가한 한씨는 한국인 최초로 임동창풍류 허튼춤 ‘선’과 ‘달하’를 개막식 오프닝과 피날레공연에서 선보여 관객들로 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키르기스스탄 전통음악을 듣고 우리의 전통 춤사위로 이를 표현해 냄으로써 페스티벌 관객으로 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너무나 영광스럽다"면서 "한국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의 문화를 한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양국간 문화적 동질성을 찾는데도 애쓰겠다"고 임명 소감을 밝혔다. 한씨가 참가한 '2023 노마드패션 월드페스티벌'은 지난 10일부터 2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에서 공식 개막식을 가진 뒤 두주일 동안수도와 지방에서 행사를 가진 뒤 24일 대단원을 막을 내렸다.   '노마드패션 월드페스티벌'은 2017년에 시작되었으며 세계 50개 국과 패션위크와 패션하우스를 가지고 국제행사이다. (김상욱)

최근 내린 폭우로 주택, 도로 등이 침수된 러시아 극동 연해주 우수리스크 도시 피해 현장에 북한 주민들이 직접 나와 복구 작업을 도왔다고 26일(현지시간)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연해주 국제협력 기관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에 폭우 피해가 난 연해주 우수리스크 중앙시장에서 삽 등을 들고 복구 작업 중인 북한 주민들의 사진을 올리며 이러한 소식을 전했다. 기관 측은 "연해주에서 지내는 북한 주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폭우로 토사와 잔해 등이 쌓인 우수리스크 중앙시장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며 "현재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북한 친구들 도움에 감사함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날 우수리스크 폭우 피해 현장에 나온 북한 주민들은 지난 2020년 1∼2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 국경이 닫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연해주에 남은 북한 노동자들로 보인다. 현재 연해주에 있는 북한 노동자 규모는 1천∼2천명 정도로 추산되며, 상당수는 러시아 당국이 발급하는 학생 비자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날 복구 현장에 나온 북한 주민 규모와 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폭우 피해 현장에 투입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관계자는 "러시아 기관이나 매체에서 현지에 남아있는 북한 주민들을 직접 언급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며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최근 러시아와 북한 간 우호적 관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국경을 걸어 잠근 북한은 지난 25일 3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를 보냈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3시간가량 머물다 평양으로 돌아간 해당 여객기에는 러시아에 머물던 주민 등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9∼11일 태풍 카눈 영향으로 최대 188㎜의 큰비가 쏟아져 주택 4천여채 등이 침수된 연해주에서는 지난 23~25일 또다시 큰비가 내려 농경지와 도로 등이 잠기는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연해주 당국은 최근 2주 사이에 발생한 전체 폭우 피해 규모는 70억루블(약 980억원)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연해주에는 연방정부 차원의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다.(연합뉴스)

토카예프대통령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창립멤버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은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SCO를 보다 효과적인 조직으로 변화시킬 계획이다"고 말했다고 현지 매체인 자콘이 25일(현지시간)보도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공동노력을 제안했다. 토카예프는 "SCO는 20여 년 동안 다자간 관계와 지역 차원의 협력을 발전시키는 데 귀중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면서 "BRICS와 SCO의 공통 이익과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공동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브릭스 플러스 형식의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유엔 헌장에 기초하여 평화, 안정, 안보를 위한 수용 가능한 공식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의로운 평화와 조화를 위한 세계 통합'이라는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계획은 글로벌 안보와 안정 분야의 진전을 달성하고 보다 합리적인 정치적, 경제적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토카예프는 “중요한 디지털 영역, 전자상거래,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SCO, BRICS 및 BRICS Plus 국가의 성과를 결합하고 정보 교환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카자흐스탄은 남북 및 동서로 뻗은 교통로를 통해 경제, 무역, 운송 및 투자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데 모든 파트너가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중요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보완하는 카스피해 횡단 국제 운송 경로는 무역 협력에 대한 귀중한 전망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당국이 다음달 1일부터 반려동물 등록제를 시행키로 한 가운데 관련 세금 부과 가능성이 점쳐지자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일간 텡그리뉴스지는 21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당국이 반려동물 세금과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7월 카자흐스탄 생태 및 천연자원청 산하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가 카자흐스탄에서 젤리·초콜릿류 패키지 디자인을 새로 단장한다. 자체 캐릭터를 도입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현지 제과 시장 점유율을 늘리겠단 계획이다.16일 롯데웰푸드 카자흐스탄법인(이하 롯데 라하트JSC)에 따르면 젤리 '주믹스'와 초콜릿 '움카 베어'를 리뉴얼한다. 주믹스와 움카 베어는 롯데 라하트JSC의 대표 젤리·초콜릿 브랜드이다. 제품에 신선함을 불어넣기 위해 패키지 리뉴얼을

환경부(장관 한화진)와 외교부(장관 박진)는 우리나라 물산업의 해외수출 활성화를 위해 ‘한국-카자흐스탄 물산업 협력사절단’을 현지에 파견한다고 8월 22일 밝혔다.이번 협력사절단에는 환경부, 외교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환경공단 및 한국물산업협의회가 참여하고, 민간 사절단으로 ㈜터보윈, ㈜에너토크, ㈜효림E&I, ㈜그레넥스, ㈜씨노텍, 자인테크놀로지(주), 쿠기, ㈜미시간기술 등 카자흐스탄 진출을 희망하는 물 분야 8개 국내기업이 참여한다.협력사절단은 8월

베트남과 카자흐스탄이 양국 우호관계 증진과 함께 경제·무역·농업 등 광범위한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보 반 트엉(Vo Van Thuong) 베트남 국가주석은 21일 베트남을 방문중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환영식에 이어 열린 정상회담에서 경제·무역·투자 등 대한 양국간 실질적 협력방안을 논의했다.토카예프 대통령은 트엉 주석의 초청에 따라 20~22일 사흘간 일정으로

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까지 3달 정도를 앞둔 가운데 ‘2030 유라시아 시민 대장정' 참가자들이 13일간 몽골 울란바타르,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을 방문하는 대장정에 돌입한다.참가자들은 2030부산세계박람회와 개최 후보도시인 부산의 매력과 역량을 세계 주요 도시에 홍보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부산시와 부산글로벌도시재단은 22일 오후 부산역 대합실에서 ‘2023 유라시아 시민대장정’ 출정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출정식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중 청소년들의 모임인 '독립-애국자'에서 본지로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광복절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독립영웅들의 후손 '독립애국자'의 청년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이번 명절을 맞아 고려일보 편집자들은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주제 공모전을 마련해 영웅들의 후손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이 신문의 창간호는 일제 강점자들에 맞서 조선 독립을 외친 3.1 만세 항쟁을 다루었습니다.   1919년 탑공원에서 일어난 이 중대한 사건을 계기로 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항일독립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고 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들 뛰어난 인물들은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6~30세의 젊은 후손들이 오늘날 같은 독립애국운동으로 뭉쳤습니다. 그래서 김 콘스탄틴 고려일보 편집장이 지적했듯이, 이 조직과 신문 사이에는 영광스러운 역사가 입증된 강력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축하 행사에 참석한 태영사는 '독립-패트리어트'의 활동을 포함하여 카자흐스탄 외교 사절단이 가장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의 역사를 기리는 모습과,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길을 걸어온 영웅들이 운명의 뜻에 따라 사랑하는 조국에서 멀리 떠나게 된 모습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후손들에게 영감을 준 전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장인 김 로만이 행사를 지지하면서  “독립운동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 여년 전, 온 민족이 하나되어 족쇄를 벗어던졌습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함께 발전하고 고귀한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단결시키고 있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고려국시 만들기와 찰떡 만들기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현대적인 도시와 편안한 환경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의 삶에 잠시 뛰어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은 "고려국시"를 테이블 위에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기술과 팀워크가 필요한지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맛은 그 요리가 한국인의 최고의 전통에 따라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미 특이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기술과 독창성을 발휘하기 위해 아이들이 개인 및 팀으로 경쟁하는 게임이 열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함께 단결하고 발전하려는 '독립-애국자' 운동의 사명과 일치합니다. 참가자들은 최근 며칠 동안 가장 따뜻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가 좋은 연설을 해주셔서 자랑스러워요. 무엇보다 예전에 찰떡과 고려국시를 끓이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직접 차트톡을 이겨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나 역시 게임을 좋아했는데, 게임이 많지 않아 아쉬워요”라고 게봉우의 후손인 앨리스 노는 말했습니다.   “먼저 이런 흥미로운 행사를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한숨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고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손들의 자부심과 우정입니다.”라고 채 그리고리 니꼴라예비치의 후손인 김 타티아나는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고려일보 신문을 소개받았고,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소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게임도 많았고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김경천의 후손인 다니엘 헤가이가 말했습니다.   “행사가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지인도 생겼습니다. 또 한국 신문인 '고려일보'에 대해 흥미로운 것도 많이 배웠고, 전통 요리 준비 과정도 살펴봤고, 행사 개회식에도 참석했다”고 민긍호 선생의 후손인 데니스 김씨가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영웅 '독립애국자' 후손들의 청년운동은 계속 발전하여 국제적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든 측면에서 젊은 조직에게는 더 나은 변화가 필요한 삶에서 자신의 의견을 듣고 리더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소규모의 긴밀한 팀으로서 첫 번째 단계를 밟았습니다. 일련의 원격 회의를 열고, 여러 나라의 젊은 후손들과 접촉하고, 한국의 영웅들을 기억하는 골목을 만들고, 개막식에 참여했습니다. 기념물. 최근 제83주년 영웅들의 날을 기념해 만든 TV극 '플래시'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쇼는 2022년 11월 6일 알마티에서 에서 열렸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고조할아버지의 작품에 우리 아이들도 참여했어요. 그리고 8월 23일에는 카자흐스탄 후손회 역사에 대해 보고할 예정인데, 거기에서 우리 청년단체를 별도의 섹션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국제심포지엄에서 낭독될 예정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위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세대의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강한 뿌리를 갖고 있고, 우리 조상들은 한국 영웅들의 후손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했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원인은 귀하가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개인이나 가족의 이익을 넘어서 전체 디아스포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위대하다고 간주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믿습니다!”, 계 이리나가 이벤트 참가자들에게 연설하면서 말했습니다.   '독립-애국자'는 다른 나라의 젊은 후손들과 국제 관계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새로운 큰 목표를 세웠습니다. 독립성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경계가 없습니다.

  크슬오르다 농업전문학교를 최우등 성적으로 필한 김 블라지미르는 찌미랴세브 명칭 농업아카데미야에 입학하기 위해 1952년 초가을에 모스크바에 왔다. 중앙건물에 자리잡은 접대실에서는 11시에 면담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월로자에게는 거의 두시간 여유시간이 있었다. 그는 면담을 앞두고 긴장감도 풀고 흥분도 가라앉힐겸 아카데미야 건물앞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기에는 소련의 여러 곳에서 온 신입생들이 면담을 기다하고 있었다. 그들중에는 최우등생, 메달을 받은 졸업생들도 적지 않았다.   정각 11시에 블라지미르는 차례를 기다렸다 그의 성명을 복부르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면담실로 들어갔다….장령북을 입은 심사위원을 엄숙해 보이는 위원 몇몇이 앚아있었다. 와실리 와실리예비치 윌리얌스가 심사위원회 위원장이였는데 그는 농업과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였다. 윌리얌스는 아카데미야 토양학 및 농업화학 강좌장이였다. - 농업전문 학교를 필하고 어디에서 실습을 했지? – 와실리 와실리예비치가 월로자에게 물어보았다. - 저명한 김만삼 회장의 <기간트>꼴호스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 월로자는 긍지감을 품고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은 벼재배 분야에서 해마다 기록을 세우며 고려인으로서는  사회주의 로력영웅의 칭호를 맨 먼져 받은 김만삼을 소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질문은 스포츠에 대한 것이였다. 월로자는 권투를 했으며 시 및 주 권투경기에도 여러번 참가하였다.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다. 이것도 긍정점이였다. 더군다나 윌리얌스 박사도 스포츠 애호가였다.   농업아카데미야에 합격된 김 블라지미르에게 기숙사에 자리를  주었다. 그는 뚜와에서 온 옌사크 하얀과 한 방에서 살았다. 월로자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먹장같은 검은 구름이 월로자의 머리우에 이미 드리워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지 거의 두 달이 되던 어느날 그를 대학 관리인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는 불안한 감을 안고 사무실 문턱을  넘어섰다. 월로자는 관리인이 할 이야기를 대략 상상할 수 있었다. 월로자 자신도 이 문제가 항상 근심스러웠지만 강제이주 후 이미 5년이 지났는데 무사히 너머가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우선 모스크바에 거주등록이 아직도 되지 않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데 왜 규칙을 위반하면서 모스크바에 왔느냐고? 하여튼 제 6부서 국장을 찾아가서 거주등록을 부탁해봐, 만일 국장이 허가하지 않는다면 집으로 되돌아가는수밖에 없어 – 관리인이 말을 끝냈다.   이 말을 들은 월로자는 서 있는 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아카데미야에 입학하려고 그 먼길을 와서 입학까지 했는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억울하기가 끝이 없었다. 국장이 허가하지 않을 확율이 높았다. 그래도 그 기관을 찾아가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또 다른 문제가 나섰다. 차표를 구매할 돈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물론 되돌아 가게 된 것이 그의 잘못이 아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도 잘 알기 때문이였다. 월로자는 사웰롭스끼 역에서 집을 부리면서 차비를 벌었다. 그래서 차표를 사러 역에 갔는데 철도종업원의 옷차림을 한 사람이 월로자와 말을 걸면서 어디로 가는가고 물어보았다. 월로자의 입에서 크슬오르다라는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그 사람은  크슬오르다에 출장을 갔었는데  월로자가 산다는 그 거리의 한 집에서 며칠 지냈다고 이야기 하면서 마치도 한 고향 사람을 만난듯이 반가워 하였다. 어리석은 월로자는 그 때 왜 그 사람이 자기에게 그렇게 바싹 다가오는가를 몰랐다. 월로자는 표를 사 줄 수 있다는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돈을 주었다.  그 시기는 차표를 사기가 아주 힘들었던 때였다. 그 사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기를 당한 월로자는 기숙사에 와서 그 사연을 이야기 했다. 옌사크를 비롯한 동창생들이 돈을 거두어 월로자에게 주었다. 월로자는 일생을 두고 그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