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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상욱 주필 <우리 모두가 뭉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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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동료인 <한인일보> 김상욱 주필을 잘 알고 있다. 항상 밝은 미소로 우리 신문사에 나타나 노트북이 든 배낭을 어깨에서 내려 놓으면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 고 묻곤 한다. 김상욱 선생님은 <고려일보> 한글판을 계속 돕고 있으며 우리가 같은 행사에 참가할 때면 집집에 실어다 주면서 <운전기사>의 역도 담당한다. 우리는 김사장에게 임의의 불편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질문을 할 수 있다. 혹시 그의 자리에 다른 한국인이 있었더라면 질문의 내용을 좀 섭섭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김선생은 정중하게, 변함없는 미소로 대답한다. 김상욱 사장이 반은 카자흐인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카자흐식 사고방식에 젖어 있고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카자흐스탄인들보다 못지않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서울에서 재외동포 언론 국제심포시엄이 진행된다. 지난해에 재외동포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상욱 주필이 발제를 할 것이다. 우리는 <고려일보>의 운명에 대해 항상 근심걱정하시는 김상욱 주필과 그의 서울출장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진 따마라

        -그 어느 한때 <고려일보>가 무엇으로 김선생님의 환심을 얻었으며 왜 <고려일보>를 소중히 여깁니까?

        -<고려일보>의 역사가 깊고 영웅과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신문에 고려인들의 숨결이 살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90년대에 이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협력단이 저를 알마아타로 파견했고 그 때 제가 알마아타에 왔습니다. 나는 <고려일보>와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힘이 가능한대로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재외동포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으로서 <고려일보>가 창작활동을 계속하며 될 수 있는 대로 해마다 독자들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을 바랍니다. 그리고 모국 멀리에서 발간되는 이 신문이 통일을 테마로 한 기사를 정기적으로 싣는 것이 저의 마음에 듭니다. <고려일보>는 <한반도 통일의 불가피성>이라는 표제 하에 김 게르만 교수 그리고 최근 2년은 기타 한국학자들의 기사를 매달 실었습니다. 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나 알마티에서 진행되는 여러가지 행사에 대한 정보를 <고려일보
>에 제때에 실리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김선생님, 금년에 4월 15-19일에 진행되는 심포지엄을 비롯하여 해마다 진행되는 재외동포 기자대회가 기자들의 활동에서 도움이 되는지요?

        -이번 심포지엄의 과업범위가 다른 것에 비해 더 넓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실지에 있어 모든 재외동포 언론계가 부닥치게 되는 문제를 토의할 것이며 세미나도 진행합니다. 서로 교제하고 토의하는데서 해결방안이 나오는 것이지요. 저의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귀신문의 기자들도 해마다 기자대회에 참가하면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기본 과업은 아이디어를 모으며 기자들을 서로 받들어 주고 경험을 많이 쌓은 기자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뭉쳐야 합니다. 그것은 재외동포 기자들의 과업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독자들에게 정보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보급합니다. 우리 민족이 세계의 방방곡곡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금년에 어디에서 오는 기자대표들을 기대하며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요?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CIS 나라들 그리고 물론 한국 기자들이 포럼에 참가할 것입니다. 40명의 기자들에게서 이미 신청서가 들어 왔습니다. 전통에 따라 이런 포럼이 진행될 때 그 한국의 어떤 도가 조직문제를 담당합니다. 금년 포럼 조직자로 강원도가 나섰습니다. 거기에 물론 스폰서들이 도움을 보탤 것입니다. 금년에는 포럼진행을 좀 다양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기본 행사는 서울에서 하고요 세미나는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하기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역사유적지와 명승지들을 돌아볼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북한과 남한간 관계가 온화해 졌는데 북한 기자들의 참가를 기대하는지요?

        -우리도 북한기자들이 참가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요 결국 그 어떤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내성을 내여 다음 포럼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포럼을 개인회사-스폰서들만이 아니라 국가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것은 한국에서 기자들을 깊이 존대한다는 것을말해준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이 행사가 주로 국가의 부담으로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그 원조가 어느 정도 줄었습니다. 개인회사들이 원조해 주어서 다행입니다. 한국에서 기자는 위신 있는 직업입니다. 한국에서는 언론계가 대통령, 국회의원들, 판사들 다음의 네번째 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계가 국민과 아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정권은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런즉 인터넷이 언론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지요. 게다가 긍정적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면에서 세계의 모든 기자들의 문제점이 같다고 봅니다. 모든 자료들이 인터넷에 떠 있어 찾아볼 수 있는데 신문을 구독할 필요가 있습니까? 인터넷 망에서 정보를 무료로 빨리 읽어볼 수 있는데요…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언론계는 새로운 현실의 조건에서 살아나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출판물이 많거던요, 카자흐스탄보다 훨씬 더 많지요. 촌, 구역, 도시, 주, 공화국 신문들 그리고 황색(저급, 악덕?) 신문도 잠자코 있지 않거던요…

        -언젠가 기자의 직업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언어학자인 선생님 앞에는 학자나 비즈니스맨, 관리의 길이 열려있지 않았

습니까?

   -실지에 있어 나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을 졸업한 후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스크바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앞에는 카자흐탄으로 갈 길이 열렸습니다. 국제협력단 (KOIKA)의 파견장을 받아 나는 1995년에 카자흐스탄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다음에 신문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은 제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셨거던요 – 안정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였어요…출세하는 과정에는 항상 그 어떤 문제점과 분명치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형제들중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처음에는 반대하여도 결국에는 항상 저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아내 이현경이 항상 저의 의견을 듣고 받들어 줍니다. 우리 부부는 러시아말을 모르고 카자흐스탄에 왔습니다. 나는 두 달 동안 밤낮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결국 대화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내가 영어를 알았던 것이 러시아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던가봐요. 맏아들과 딸이 이 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막내 아들이 금년에 학교를 필합니다. 귀국할 생각을 하니 슬픈 생각도 듭니다.

        -아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생각이지요,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들 걱정이지요. 딸애는 의대에서 공부하고 아들은 군대복무를 끝내고 역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말이 옳지요 – 우리가 자식들 곁에 있으면서 받들어 주어야겠지요…

        -김사장님이 적극적 활동을 못해서 유감이겠군요?

        -활동은 한국에 가서도 할 수 있는데 현재 알마티에 있는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두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지요. 한국에 가도 다 좋은데 이 곳에서 사귄 그런 친절한 사람들이 저의 주위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의 현지인들은 다 마음이 트이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웃과도 친척처럼 지냅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간 관계가 합리적이라고 할까요 – 돈과 사업이 첫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생살이에 오직 그것 만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지요. 카자흐스탄에서 오래 사는 동안 카자흐스탄과 전통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요리 – 베스바르마크, 카싀, 슈바트, 꾸믜스도 즐깁니다. 나우르즈 명절도 좋아합니다. 지어는 동포들도 다른 나라의 동포들과 차이나는 것 같아요. 고려인들 중에는 거의 친척으로 된 동포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사교성이 있고 활동력도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좋은 사람들과 사귀게 되는 것이지요…아마 그래서 기자의 직업을 전공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직업이 기자이기에 나는 세계 15개의 나라들에 가 보았습니다. 곳곳에 사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 독특한 문화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저의 취미가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여행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쓰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제가 운영하는 신문과 <고려일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미소처럼 밝고 긍정적인 인터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앞으로도 마음에 드는 일을 계속 하시고 선생님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항상 주위에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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