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기획 : 우리는 고려사람이오 – 5]
고려인들은 평소 어떤 음식을 먹을까요? 2
김상욱 알마티고려문화원장
직장으로 출근하는 고려인들은 점심을 직장동료와 함께 주변 식당에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 소련시절에는 직장마다 ‘스딸로바야’(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 많은 공장과 농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보기 어렵게 되었고 자체적으로 도시락을 싸서 다닙니다.
점심 도시락은 집에서 아침에 먹은 것을 싸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흰쌀밥과 왜(오이), 토마토를 비닐 봉지에 담아와서 사무실 책상에 펼쳐놓고 소금을 뿌려서 먹거나 자이(된장)에 찍어서 먹습니다. 마르꼬프채나 찡고치 , 가지채를 가져와서 먹기도 합니다. 제가 카자흐스탄에 와서 몇 년이 안되었을 때인데, 방문한 모 기관의 사무실 직원들이 식빵에 된장을 발라서 먹는 모습을 보고 무척 신기하게 여겼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그 직원들은 고려인들이었고 러시아인 동료도 마치 버터 처럼 된장을 빵에 발라서 먹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었습니다.
젊은 고려인들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중국산 또는 러시아산 컵라면과 흘렙(식빵)과 마르꼬프채로 점심을 해결하고 고려인 대학생의 경우, 학내에 있는 ‘스딸로바야’(구내식당)에서 삐라쉬끼 와 홍차로 떼우기도 합니다. 이는 고려인들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카자흐스탄의 대부분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독립유공자 민긍호 장군의 후손이기도 한 민슈라 할머니댁에서 먹은 저녁상에는 밥과 그 옆에 물그릇이 놓였고, 배챠짐치(배추김치)를 주 반찬으로 해서 ‘보르쉬’(러시아식 국) 국이 함께 나왔습니다.
고려인들의 식사 후에는 반드시 홍차와 사탕 혹은 당분이 있는 비스켓류를 디저트로 합니다. 꿀과 견과류를 디저트로 차리거나 전날 가족의 생일상에 올랐던 케잌을 내오는 가정도 있지만 주로 홍차에 설탕이나 사탕은 필수적으로 차려집니다. 고려인 사이에는 ‘아무리 잘 차린 상을 받아도 맨 마지막에 홍차를 못 마시면 그 앞에 먹었던 산해진미도 허사가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식후 홍차를 마시는 문화는 이미 고려인들의 식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소련의 해체후 시장경제로 체제전환이 이루어진 카자흐스탄의 경우 극심한 빈부격차가 발생했습니다만, 홍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할 것없이 식사 후에 마시는 홍차 한잔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려인가정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 가정이나 카자흐인 가정을 방문해봐도 똑같습니다. 다만, 카자흐인들은 고려인이나 러시아인들이 홍차에 레몬을 넣어 마시거나 그냥 홍차를 마시는 것에 비해 우유를 타서 마십니다. 현지의 고급레스토랑에서 홍차를 시키면 종업원이 우유를 탈 것인지? 레몬을 넣을 것인지를 꼭 물어봅니다. 물론, 카자흐인 가정이나 잔치에 가면 질문없이 홍차에 우유를 타서 나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위구르인들도 많이 사는데 이들은 여기에 소금까지 넣고 마시는 풍습이 있습니다.
저는 매년 중앙아시아 초원과 파미르고원 등을 여행하며 혹독한 자연조건에도 굴함이 없이 사는 중앙아시아인들을 만나고 삶의 에너지를 얻고 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중앙아시아인들이 홍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유를 탄 홍차 한잔을 마시며 하루일과를 시작하는데, 홍차는 이들에게 딱딱한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뜨거운 스프이자 꽁꽁언 몸을 녹이는 따뜻한 숭늉이자 친구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주는 한잔의 와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들에게 홍차야 말로 삶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 고려인들도 예외없이 홍차를 사랑하는데 어떤 조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하루 평균 7~8잔의 홍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실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홍차 한잔으로 아침을 열고 홍차와 함께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삐라시끼는 러시아식 음식입니다. 밀가루에 이스트(러시아어로는 드로제)를 넣어서 반죽을 합니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도 약간 넣습니다. 감자를 삶아서 부숴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빵의 빈 속에 담은 다음, 해바라기 식용유에 노릇노릇하게 튀깁니다. 아침이나 점심에 간간하게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바우르사끼라는 카자흐식의 빵과 와레니(과일 쨈)를 함께 먹습니다.
또한 고려인들은 주먹만한 배고자(왕만두와 같음)를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한 뒤, 쇠고기를 다져 넣고 양배추를 잘게 썰어서 넣습니다. 베고자 두개를 먹으면 보통 점심을 대신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인들의 경우 생선을 자주 먹습니다. 연해주에 거주할 때 즐겨 먹던 명태나 가자미 등 바다물고기를 대신하여 발하쉬 호수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주로 먹는데, 주로 ‘혜’로 만들어 먹거나 해바라기 식용유에 튀겨서 먹습니다. 이에 비해 러시아인들이나 카자흐인들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훈제를 해서 먹습니다. 현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훈제 생선으로는 수닥(중앙아시아 호수에서 많이 잡히는 민물고기), 쏨(메기), 사잔(잉어), 등이 있고 주로 발하쉬 호수가의 어업 꼴호즈에서 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발하쉬 호수가의 어업꼴호즈는 고려인들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어부생활을 하던 고려인들이 이주해서 9개의 어업 꼴호즈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꼴호즈들은 나중에 대형 국영농장으로 통합되지고 특히나, 소련해체와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경제적 혼란이 오자 고려인들 대부분이 꼴호즈를 떠나 알마티 등 도시로 이주와서 지금은 고려인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는 고려인들로부터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운 카자흐인들이 그 어업꼴호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발하쉬호수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내 어업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아랄해로도 이주됩니다. 크즐오르다에서 아랄해까지는 자동차로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중심도시 아랄스크 역시 고려인의 도시입니다. 아랄스크가 고려인의 도시라는 말은 아마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고려인들이 이주하기 전의 아랄해는 유라시아 초원에 존재했던 소금기가 있는 큰 호수 또는 내해 였습니다. 고려인들이 이주한 이후부터는 아랄해는 당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련군인들의 주요 단백질원이었던 생선통조림에 사용될 생선을 잡는 중요한 어장이 되었습니다.
고려인 선장들이 매번 만선의 기쁨을 안고 출항했고 고려인 아낙네들은 생선통조림 공장에서 빠른 생선손질 속도로써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손놀림이 얼마나 빨랐으면 훈장까지 줬을까요? 아랄스크 시립박물관에 가면, 사회주의 노동영웅 김분옥 아주머니의 사진과 그녀가 일했던 생선통조림 생산라인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고 고려인 선장들의 어업활동들에 대해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외에도 소비에트 영웅칭호를 받은 민 알렉산드르 빠쁠로비치의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아랄해가 줄어듬으로써 생태환경의 위기를 발생하자 아랄스크를 떠나 인근 크즐오르다, 알마티, 누르술탄으로 이주하고 2가정만이 남아있습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