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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 울루스 성립 800주년 특별 기획 : 유목민의 땅,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1]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전개는 자연지리의 산물

올해는 주치 울루스(큽차크 칸국성립 800주년

고대부터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지배를 받았던 동슬라브인들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은 북쪽의 거대한 초원지대 생성케해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연초 현지 언론과의 신념 대담을 통해 올 한해의 국정 과제와 카자흐스탄에서 열리게 될 주요 국제행사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중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올해가 주치 울루스 성립 800주년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이 뿌리로 부터 수세기에 걸쳐 국가시스템을 발전시켜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이러한 카자흐스탄 역사에 관한 다양한 책이 출판 것이고 이를 위해 200여명의 국내 학자와 약 60명의 해외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1465년 자니벡과 케레이 술탄이 세운 카자흐칸국에서부터 국가의 기원을 찾았던 기존의 싯점보다 25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징기스칸의 큰 아들인 주치가 세웠던 주치 울루스(큽차크 칸국)을 뿌리로 잡았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주치 울루스(큽차크 칸국)의 일원으로써 공통의 역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서방의 제재와 봉쇄속에서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돈독히 해나가고 내부적으로는 서방의 일원이 되고 싶어했으나 절대 받아주지 않은 냉엄한 현실을 처절하게 깨닫은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가 강화되는 시점에 나온 것이라서 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 글에서는 러시아를 포함한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혹자는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활동무대였던 중앙유리사아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왜 러시아를 포함시키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러시아를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러시아를 이루는 동슬라브인들은 고대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목민들의 지배를 받고 유목민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슬라브인들은 5세기부터 투르크계 사바르 칸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후에는 아바르 칸국, 하자르 칸국에 정복되어 있었다.

  특히, 하자르 칸국은 동슬라브인들의 초기 국가인 루스칸국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슬라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바로 하자르 칸국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중앙아시아의 동유럽 정복을 받아들이고 그 휘하에서 활동했던 동슬라브인의 문화는 3세기부터 10세기까지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유목민의 지배에 따라 서유럽 문화와는 다른 면을 띄게 되었고 특히나 그 이후 징기스칸의 큰 아들 주치 울루스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대몽골제국의 일원이 되면서 부터는 이질화는 가속화되었다.

이를 일부에서는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마디로 러시아의 역사는 중앙유라시아의 정치적 변동과 직간접적으로 연동되었던 것 만큼은 분명할 뿐 아니라 오늘의 대 러시아는 ‘타타르의 멍에’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유리시아는 유목민의 활동 무대

  유라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 까지 영향을 끼쳤던 스키타이제국, 이들은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세계 최초로 초원의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후 흉노제국과 돌궐제국, 그리고 비로소 세계사를 탄생시킨 징기스칸의 대몽골제국은 모두 중앙유라시아를 근거지로 삼아 동서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모르겠다.

  이런 호기심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자흐스탄의 영토 범위와 중앙유라시아의 개념을 따져보자. 현재 카자흐스탄 영토는 카스피해 북안부터 동쪽으로 알타이 산맥 그리고 남으로 천산산맥을 경계로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중앙유라시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유목민들이 가장 탐내던 기름진 초원지대의 대부분이 현재 카자흐스탄 땅이다.  

  중앙유라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 부분 즉,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거주지를 말하는 개념인데, 동서로 동유럽에서 동북아시아에 이르고, 북극해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카프카스산맥,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고원, 쿤룬산맥, 황하에 이르는 실로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앙유라시아는 지리적인 용어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개념이다. 즉, 중앙유라시아는 유구한 역사과정에서 그 범위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그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세계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중앙유라시아’라는 지역명칭은 정작 외부인이 붙여준 경우가 많았다. 20세기가 될 때 까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했던 거주민들은 이러한 광역적인 지역 명칭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투르키스탄(투르크인의 땅)이라는 유명한 지역 명칭도 19세기에 들어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과정(이런바 ‘그레이트 게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개념은 이 정도로 하고, 자연환경을 살펴보자. 나는 자연환경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데, 한반도에 갇혀 살았던 우리가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여행을 다녀온다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지만…..

  중앙유라시아는 한마디로 높은 산맥과 고원, 그리고 초원과 사막, 풍부한 녹지, 오아시스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산맥과 고원의 중심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해발 4000미터와 5000미터짜리 고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가 사는 알마티의 뒷산 침불락만 해도 4천 고봉들이 부지기 수이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빙하를 볼 수 있다. 캅차가이 호수 쪽에서 침불락을 쳐다 보면 정말 장관이다. 특히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눈 덮힌 천산산맥은 시쳇말로 ‘카메라만 갖다 데면 바로 작품이 되는’ 그런 명소이다.

  더불어, 알마티 시내에서 출발하여 1시간이내에 해발 3200미터에 도달할 수 있고 또 거기서 걸어서 2시간이면 빙하의 갈라진 틈, ‘크레바스’를 체험할 수 있다. 그 뿐이랴, 골짜기 자체가 빙하 위에 놓여있어서 딛고 선 땅 밑에서 빙하가 녹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는 체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동서로 8000킬로미터인 중앙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을 하루 200킬로미터를 달리는 말을 타고 40일 만에 주파한다는 개념을 현재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반도에 갇혀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선조들은 실제로 8000킬로미터 거리를 우습게 횡단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흉노가 동서 흉노로 분열된 후 이들은 가볍게(사실은 생존을 위해) 초원을 가로질러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여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개념으로는 어마어마한 거리이지만 수천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유목민들은 이 거리를 오가며 삶을 이어왔고 지도자를 따라 뭉치기도 했고 분열을 거듭하면서 여러 왕조를 탄생시켰다.  

  내가 아는 현지 학자는 우리가 배운 세계사 책에 등장하는 흉노(훈), 투르크, 선비, 몽골 등도 따지고 보면 지도자의 씨족이나 부족명을 따라 불리워진 것에 불과하고 유라시아 초원에서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 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유라시아 이 땅에서 명멸해간 여러 왕조들의 역사는 곧 카자흐스탄의 역사이다고 강조했다.    

천산산맥은 실크로드의 어머니

<캅차가이 호수에서 바라본 천산산맥>

  중앙유라시아의 자연 환경을 말하면서 꼭 언급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천산산맥이다.  동서로 2500킬로, 남북으로 약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이 산맥은 바로 ‘실크로드의 어머니’이다. 고봉준령들이 널려 있는 이 천산산맥은 비구름을 막고 서서 비와 눈을 뿌리게 했다. 그래서 천산 북방에는 풍요로운 초원이 있는 준가르 분지, 세미레치, 그리고 그 북쪽엔 알타이 산맥이 있다.

 이뿐 아니라 이어진 파미르 고원까지 이들 고산준령은 중앙유라시아의 자연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의 이동을 가로막아 이 지역을 건조하게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구름과 눈을 불러와 초원과 분지를 푸르게 물들이는 비를 내리게 하고 만년설이 녹은 물은 강이 되어 저지대 오아시스를 기름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고산준령이 없었다면 중앙유라시아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정주민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음으로 강 유역에 풍요로운 삼림과 비옥한 땅을 형성하면서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볼가 강, 동서쪽에는 광대한 킵차크 초원(남러시아 초원과 카자흐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서 준가르 분지를 지나 몽골고원에 이르는 지역은 이른바 유목민의 세계인 초원 지대이다. 유라시아 역사를 통해 다양한 유목민 집단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많은 유목민들이  국가를 세우고 흥망을 거듭한 지역도 바로 이 초원 지대이다.

  한편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한 고한 지대의 산록이나 그곳에서 발원하는 하천 유역에는 오아시스 형성에 적합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서투르키스탄의 아무다리아강, 시르다리아 강, 자랴프샨 강 유역에는 페르가나 계곡을 비롯하여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호라즘 등 대표적인 오아시스도시가 이루어졌다.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도 위에 그어진 국경선을 제거하고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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