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사회[현장 르포] 여러민족이하나된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축제

[현장 르포] 여러민족이하나된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축제

역기 대신 양을 어깨에 메는 카자흐 민속 역도 시합 이목

유목민 전사 복장, 독수리 사냥꾼 시가 행렬

카자흐스탄의 최대 명절이자 봄의 축제인 ‘나우르즈’ 행사가 열리는 알마티 중심가에 위치한 ‘아스타나 광장’.  

기마부대와 민속의상을 입은 500여 명이 참가하는 ‘코쉬’라는 대규모 시가행진대가 입장했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 전, 징기스칸 시대로 거슬러간 듯한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키가 2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유목 전사들이 도끼와 칼 등 무기를 들고 지나갔다. 그 뒤를 따라 민족 의상을 입은 시민들도 광장으로 입장했다.

이 자리에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참석했기 때문에 행사장으로 입장할려는 많은 시민들이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봄비가 살짝 뿌리는 와중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전통민속춤과 전통음악 공연에 열광했고, 가족 단위로 나온 시민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광장 주변에 마련된 전통공예품과 가죽제품을 만드는 공방 체험부스를 찾았다.  

나우르즈란 카자흐어로 3월이란 뜻으로써,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같은 시기(3월)에 행해지는 투르크&이슬람식 새해를 말한다.  페르시아 문화권과 투르크어권 국가들은 고대로 부터 봄의 도래와 새해의 시작을 상징하는 나우르즈를 최대의 명절로 축하를 해왔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인 이 날에 카자흐 곳곳에서는 축제와 행사가 벌어지고 전통 음식인 ‘나우르즈 코제’를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올해는 21일부터 25일까지 공휴일로 지정되어 더욱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즐겼다.

우리 민족이 설날인 정월 초 하루 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민속놀이를 즐기며 명절 분위기를 이어가듯이 카자흐인들은 3월 한달 내내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도시와 마을 대청소, 묘목 심기, 공연, 민속경기대회 등을 연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포들은 ‘나우르즈’ 를 포함해서 일년에 설날을 세 번 맞이한다. 양력으로 새해가 있고, 우리의 전통 설날인 음력 설이 있고 이슬람 설날에 해당되는 나우르즈 까지 …

알마티에서는 이날 행사 외에도 공화국 궁전 앞 아바이 광장을 비롯해서 시내 곳곳에서 다채로운 콘서트와 민속경기대회가 진행되었다.

카자흐 민속 역도 시합… 역기 대신 양을?

나우르즈 축제 연휴 이틀째, 알마티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탈가르시 나우르즈 행사장.  

봄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진입로 초입부터 길이 막혀 자동차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행사에 참가하는 공연팀과 일찍 행사장에 갈려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진입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에게 고려인 민족부스에 설치할 한국 전통 의상과 장구와 북 등 악기들이 차에 실려 있음을 확인 시킨 이후에야 비로소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길을 터 주었다.

어렵게 도착한 행사장에는 먼저 온 지역 고려인협회의 간부와 고려인 합창단들이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문화를 알리는 부스를 설치하여 축제를 더욱 다양하고 재밌게 만들었는데, 그중 고려인 부스와 튀르키예 민족부스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전통 한복과 김치와 베고자라고 불리는 이북식 왕만두, 한과 등이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부스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가주리’ 라고 불리는 한과를 맛보고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걸 잊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의 각 지부들은 탈가르 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역에서 열리는 나우르즈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우리의 춤과 노래 그리고 음식 등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현지에 알렸다.  카자흐스탄의 서쪽에 위치한 카스피해의 석유 수출항 악타우에서부터 동쪽 끝부분인 알마티의 위성도시인 탈가르 시에 이르기까지 지역 고려인협회는 나우르즈 축제에 참가했다.

고려인들의 부스 맞은 편에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장래 ‘카자흐스탄의 쿠레스’ 선수가 될 카자흐 어린이들이 전통 씨름을 하고 있었다. 쿠레스는 상대방의 어깨를 바닥에 닿게 만들면 이기는 레슬링과 비슷한 경기이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쿠레스는 남녀 선수들 모두가 즐기는 국가 스포츠로 발돋움하여 프로 수준까지 발전하였다.

쿠레스 경기장 옆에는 이 경기의 승자에게 줄 상금으로 보이는 크고 살찐 양 한마리가 줄에 묶여 있었다. 예전 우리의 민속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장사에게 황소 한마리를 주었듯이…

그러나 이 양은 우승 상금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카자흐 전통 민속 역도 경기를 치루기 위한 경기 용품인 것을 잠시 뒤 알게 되었다.  눈앞에서 허리에 두꺼운 가죽 벨트를 두른 한 카자흐 장년이 역기 대신 양을 번쩍 들어서 어깨에 메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심판인 듯한 이가 그 횟수를 세었다.

이어 한 청년이 양을 어깨에 메고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발버둥 치는 양을 잘 다루질 못해서 어깨에 메고 일어서기 조차 못했다. 형형색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시민들은 그 청년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응원했지만 결국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민속 역도 경기장 옆에는 우리의 그네와 똑 같은 카자흐 전통 그네를 타는 학생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시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나우르즈 쿠트볼슨(나우르즈 명절을 축하합니다)’, ‘꼭뗌 투드(봄이 태어났다)’이라고 인사를 건네었다. 이는 설날이 되면, 신년 덕담을 나누거나 복조리를 걸어놓고 복을 빌고 빌어주던 우리네 풍습과 흡사했다.

나우르즈 축제에서 카자흐스탄 전통 말 타기 경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날 내린 봄비로 인해 기마 경기들은 모두 취소되어 무척 아쉬웠다. 대신, 행사장 한가운데 마련된 무대에서는 마을 합창단들이 나와서 전통 민요를 불렀고, 또 전통 춤과 두 명의 시인이 노래 경합을 벌여 축제를 더욱 흥겹게 했다.

무대 오른쪽으로 행사장을 따라 약 300미터 가량 기억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먹거리 장터에는 양고기 샤슬릭(꼬치구이)을 굽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시민들은 샤슬릭과 뜨거운 홍차로 봄비에 젖은 몸을 녹이고 있었다.

탈가르시에서 열린 축제는 비록 알마티처럼 화려하거나 전문적인 공연단이 참가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 축제 분위기로 더욱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 오히려, 대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유목민들의 격렬한 전통민속경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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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atykim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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