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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르바예프와 카자흐스탄의 건국 7

외국인 투자 유치와 사유화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김상욱 

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알마티 필립 모리스 공장>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 경제의 미래는 한마디로 암울 그 자체였다. 갑작스런 소연방의 해체와 준비되지 않은 체제전환 과정속에서 치솟는 물자부족과 물가폭등과 함께 소수 올리가르히들의 ‘날강도식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카자흐스탄은 적극적으로 외국자본 유치와 자본주의 경제 운영 능력의 도입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어떤 외국 기업이 자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법적으로 안정된 투자여건을 갖추지 않은 옛 공산주의 국가에 투자를 하겠는가? 외국인 투자자와 기업들은 기업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즉, 재산권과 이윤 반출을 보장하는 카자흐스탄의 법률 정비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당시 나자르바예프는 1993년에서 1995년 사이 기업 친화적인 제도를 보장하기 위해 141개의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이는 주로 외국인 투자활동과 연관된 경제문제에 관한 것으로써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유화 였다.

  사유화에 관한 첫번째 실험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1993년 미국의 필립 모리스 회사에 알마티에 있던 국영담배공장을 1억 2천만 달러에 매각한 것이었다. 국영기업으로 있으면서 공장은 거의 파산지경이었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불하지 못하고 기계부품을 구입하거나 새로운 설비에 투자할 수도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된 필립모리스사는 공장에 미화 2억 4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새로운 생산설비를 설치하고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주고, 높은 이윤을 보장했다. 이것은 사유화의 좋은 예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심각한 세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 국고에 경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치되었던 기업이 살아남으로써 직원들과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경제이론이 산업현실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나자르바예프는 사유화를 위해 보다 더 과감한 실험을 결심하였다. 그 후 2년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철강 공장과 석탄광, 금광, 전력회사, 정유 기업, 국영 항공사를 포함한 94개의 대형 국영기업들을 살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한편, 이같은 조치는 국부의 유출이라는 불가피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 당시에는 외국인들과 같이 있는 것 조차 반역이라고 간주되던 ‘소련시대의 외국인 혐오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던 반대론들이 있었고,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르바예프는 사유화를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오직 ‘효율성과 비효율성’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밀어붙였다. 이때 남긴 나자르바예프의 유명한 말이 있다. 그는 “모두가 완벽하게 확신할 때까지 기다린 후 개혁을 착수할 만큼 시간이 없다. 완벽한 동의를 기다리겠다면 국가도 경제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며 폭넓은 사유화를 추진했다. 비판자들은 나자르바예프의 정실주의로 인해 그의 친척들을 포함한 소수의 카자흐인들만이 막대한 부를 차지했다고 비난하였다.  

  나자르바예프의 카자흐스탄 정부는 ‘중도적 사유화’, ‘수표에 의한 사유화’, ‘소규모 사유화’, ‘농업 사유화’ 같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서 실행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비스업종과 자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앞장에서 다룬 새로운 국가 통화의 도입과 함께 사유화와 같은 체제 전환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포함된 개혁 프로그램이 가동되자 카자흐스탄의 경제는 차츰 소련 해체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이 2,600%에 달했던 악몽같은 93년 이후 일련의 개혁조치와 함께 1995년 무렵 인플레이션은 59%까지 완화되었고 그 후 꾸준히 내려갔고, 1996년 부터는 국내 총생산이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경 90%이상의 카자흐스탄 제조 기업들이 사유화되었다.

  물론 1998~1999년 한국이 IMF사태를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경기 하락과 2008~2009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카자흐스탄의 경제도 불가피하게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이 두 시기 사이 9년간 카자흐스탄은 매년 두 자리수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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