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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투어 천산투어

[독자 투고] 중앙아시아의 물(1)

장진희 시인

천산(天山)산맥에 간단다.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언제 가는지, 얼마 동안인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 훔쳐보았다. 그림의 떡이었다. 오픈채팅방을 나왔다.

  며칠 뒤,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져 통장에 들어왔다. 딱 천산기행 다녀올 만큼.(궁금하다고? 무슨 재주로 하늘에서 떨어진 돈을 받냐고? 그건 극비사항이다.)

  하늘의 뜻이다, 천지신명의 조홧속이다. 다시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비행기표 끊기 직전이란다. 갈 수 있단다.

  미역장시 시작하면서 원을 세웠었다. 돈 모아 바이칼호수에 가겠다고. 거기 샤만섬 쯤에 서면 내가 좀더 보일 것 같았다. 내가 보대끼고 있는 무언가가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온 곳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바이칼 호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미역장시를 마무리하려는 지금까지. 대신 천산산맥이 다가온다. 그곳에도 내가 있을 것 같다, 그리운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비행기가 출발시간보다 5시간이나 늦게 뜨는 바람에 타슈켄트에서 환승하는 비슈케크행 비행기를 놓쳤다. 인천공항 측의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쪽 탓임을 말하지 않고 책임져준, 착하고 의리있는 우즈베키스탄 항공사 직원들 덕분에 타슈켄트에서 하룻밤을 묶고 예정에도 없던 타슈켄트 여행을 한나절 하게 되었다.

  아들이 깔아준 구글번역기로 호텔 직원과 대화해서 택시를 불러, 부드럽고 연한 흙벽돌 빛의 건물들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내를 지나 참 아름다운 ‘하자티 이맘 광장’에 내렸다. 영어가 좀 되는 일행과 얘기하다 합류하게 된 우즈베키스탄 여인, 예정에 없는 여행지인 탓에 우즈벡 돈이 없는 우리를 위해 그니는 달러로 주겠다는 우리 뜻을 끝내 마다하고 점심값을 내고, 선결제로 택시를 태워 주었다. 내남없는 마음, 네 불행이 내 불행이고 네 행복이 내 행복인 우리네 심성, 또 다른 나를 거기서 만났다. 꼭 껴안아 인사하고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비슈케크 공항에는 다음날 그 시간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공항 건물로 나오다 그 증상이 시작됐다. 느닷없이,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가슴이 에리거나 막히면서. 머리 끝이 쭈뼛 섰다. 이게 뭐지? 집중해야 했다. 일행들에게 보일 수도 양해를 구할 틈도 없었다. 대열에서 멀어져 혼자 있어야 했다.

  정신을 차려 다음 집결지까지 포도시 갔다. 그 동안 일행들은 좀 황당했던 것이다. 나중에 최대한 이해를 구했다.

  느닷없이 눈물이 나오면서 머릿속이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는 증상은 여러 번 있었다.

  구례 사성암에 처음 갔을 때 마애불을 처음 본 순간, 남해 보리암에 갔을 때 거대한 해수관음상은 말고 그 앞에 작고 오래된 탑을 지날 때… 그런 순간은 대체로 설명을 갖다 붙일 수 있다. 기도의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이구나, 시간의 차이를 넘어 그 공간에, 하고.

  또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던 강정마을 신당에 들어서자마자 터져나왔던 오열도, 제주 4.3 때 통째로 몰살당해 사라진 마을 곤을동에 갔을 때 머리 위에서부터 찌르던 감전 증상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제주 북촌 너븐숭이 앞에 내렸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던 눈물과 통곡도…

  대충 짐작이 간다. 시간이 지나도 그 공간에는 남아 있다. 강렬한 기운들이.

  심지어 아주 구체적인 예도 있다. 미친듯이 바람 부는, 유달산 시청 등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공중에서 떨어져나갈 듯이 흔들리는, 목포 뒷개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 남녀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날따라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떨어져나갈 듯한 표지판 아래 도로 경계석에 앉아 그 세찬 바람을 맞고 있을 때 내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남쪽으로 가라! 남쪽으로 가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서울을 빠져나와 무주로 귀농해서, 헌 집 뜯어다 새 집 지은 지 일년도 안 되었는데. 생전 처음 내 집을 마련해서 뼈 묻고 살자 했는데.

  내가 자랐던 목포에는 남으로는 길이 없었다. 오직 북으로만 길이 있었다. 남으로는 뱃길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7년 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목포에서도 남쪽, 내 태자리인 진도에 와 있었다.

  그날, 그 소리가 하도 뜽금없고 얼척없어 무지르고 하염없이 바람 속에 앉아 있을 때 그 징소리를 들었다. 뒷개를 향해 조금 더 튀어나와 있던 땅끝에서 기가 막힌 무징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누가 이 새벽에, 이 태풍급 바람 속에서 징을 치는가. 징소리는 마치 바람에 장단을 맞추는 듯하였다. 빠르고 쉬임없이 거칠고도 부드럽게 내달렸다. 신명이 지핀 소리였다. 혼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무징 소리.

놀라 일어나 일행들에게 갔다.

  “저 소리 좀 들어 봐.”

  “뭔 소리?”

  “저 소리 안 들려? 누가 기가 막히게 징을 치고 있잖아!”

  “뭔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여? 징소리?”

  이 인간들이 단단히 취했구나, 저렇게 생생한 소리가 안 들린다니.

  혼자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 쐬주를 주문하고 주모에게 물었다.

  “누가 이 새벽에 저라고 징을 쳐싼다요?”

  “징소리요? 나는 안 들리는디?”

  “아니, 저라고 신명나게 치는 징소리가 안 들린다고라? 저기! 저기 저 뒷개로 튀어나간 땅끝에서 안 치고 있소!”

  “그 자리는… 암자가 있던 자린디… 근디 십년 전에 허물어지고 없어졌는디.”

  머리 끝이 쭈뼛해졌다. 그러니까 십년 전 소리를, 그 자리에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 혼자서만.

  아이슈타인의 시공간의 휘어짐이 어떻고 하는 소리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어졌다.

  남들 잘하는 자세, 앉아서 두 다리를 뻗는 자세를 나는 잘 못 한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 꼬리뼈가 유난히 길어서, 말하자면 퇴화가 덜 되어서라는 걸.

  확실히 나는 퇴화가 덜 된 인간인가 보다.

  그런데 여기, 처음 와보는 천산산맥 아래 비슈게크에서, 이건 또 뭔 일인가.

  알 수 없다. 언제쯤 알 수 있을까? 끝내 알 수는 있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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