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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물 (4)

중앙아시아의 물 (4)

장진희 시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춘자 는 물론이고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 등 중앙아시아에서는 활짝 핀 무궁화를 볼 수 있다>

흙과 돌이 벌겋고 거칠게 드러난 땅 위로 가시 같은 풀 몇 포기씩 듬성듬성 나 있는 그 목마른 땅에 비가 내린다. 선물처럼, 축복처럼. 주룩주룩 내리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그래도 땅이, 흙이, 풀이 길게 뺀 목을 축인다. 그나마의 물로 소도 말도 양도 사슴도 토끼도 산다. 그래서 사람도 산다.

  어제 본 춘자 온천마을의 무궁화도 목을 적시고 있겠지. 무궁화를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우즈베키스탄 하자티 이맘 광장에서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에서도 카자흐스탄 춘자에서도 무궁화를 보았다.

  한민족의 활동 영역을 ‘근역(槿域)’이라 했다. 무궁화 근, 지경 역. 지배 권력 중심인 ‘국가’라는 개념보다 훨씬 덜 인위적이고 덜 폭력적이고 사실적이다. 가는 데마다 무궁화를 심었다고 해서, 무궁화가 피어 있는 곳까지를 우리의 지경(地境)으로 삼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국화(國花)가 무궁화 아닌가.

나는 가는 데마다 만나는 무궁화 가까이 가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무궁화는, 진돗개가 몇 년 만에 만나도 첫 주인을 알아보고 반기는 것처럼, 그런 고운 연보라빛 웃음을 활짝 웃었다. 마음이 따뜻했다. 여기 오길 잘했다.

  자꾸 울컥 하고 눈물이 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노래하는 사막’ 모래언덕 위에 올라 거짓말처럼 흐르는 일리강과 푸른 하늘에 하얗게 떠 있는 온달을 보았다. 그 보름달을 마주하고 모래 언덕 앞산으로 해가 넘어가고 노을이 붉게 타다가, 점점 검붉게 물들었다. 모래언덕을 미끄럼 타듯 엉덩이로 밀고 내려올 때 엉덩이 밑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났다. 모래언덕이 통째로 울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우우우웅 울었다. 노래나 울음이나 매한가지다. 내 작은 몸뚱이가 지구를 울리고 있었다.

‘노래하는 사막’을 내려와 사막 직전의 땅 같은 황량한 맨땅 위를 차로 한 시간 가까이 달렸다. 토끼를 보았다. 또 앞길을 가로지르는 토끼를 보았다. 검붉은 하늘이 더욱 점점 더 검어졌다.

  또 보았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어린 사슴. 차 소리에 놀라 검고 거칠고 듬성듬성한 풀 속으로 달려가는 또 다른 어린 사슴. 거푸 보았다.

  비로소 올 때 눈물이 났던 까닭을 알겠다.

  이 거친 땅, 이 검은 밤 속으로 달려가는 토끼, 어린 사슴. 그들이 산다. 나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땅에서 그들이 산다. 살아주고 있다. 그래서 이 땅은 황량하지 않다. 고맙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내내 그 벌판의 어둠 속 그들이 궁금했다.

  우슈토베(Ushtobe)로 향하는 날 아침,  알마티주 바시(Basshiy) 마을에서도 무궁화를 보았고, 마을 너른 골목길에서 목줄도 없는 개 한 마리와 함께 말을 끌고 가는, 우리네 농부 얼굴(얼골, 얼꼴, 얼의 꼴)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께 눈짓 손짓으로 말을 만져보고 싶다고 했더니 허락해주었다. 목덜미와 등을 만졌다. 말은 서로 다른 말(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된다. 만지는 손끝의 느낌으로 알 것이다. 말은 웃는 듯 내 얼굴로 머리를 디밀었다. 말 머리에 내 머리를 댔다. 사람 아닌 생명체와 친해지는 건 언제나 그냥 좋다.

  우슈토베 가는 길. 단선의 ‘시베리아횡단열차’ 선로를 중간중간 만난다. 나는 지도를 보며 기차역을 가늠한다.

  천산산맥에서 내려온 물이 우슈토베를 지나 발하슈 호수까지 흐르는 카라타르강 상류. 거칠고 황량한 땅이 끝나고 ‘Balpyk Bi’ 마을에서부터 강을 따라 나무들이 자란다. 초록의 농토가 이어진다. 너른 들판에는 옥수수와 감자, 해바라기가 자라고 논도 있다.

  그 농토를 빠짐없이 보아두어야 한다. 왜냐면 까레이스키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연해주에서 실려와 버려지듯 내린 땅, 우슈토베역에 처음 내려서 살기 위해 물을 끌어들이고 농사를 짓던 그 땅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 농토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고려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강을 따라 이어지는 너른 들판을 달려 우슈토베역에 버스는 도착했다.

  ‘고려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극심한 졸음이 밀려왔다. 일행들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식탁을 앞에 두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잤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며칠간의 여독 때문이겠거니 했다.

겨우 잠을 깨고 우슈토베역에 서 있는 기차들과 아주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기차가 내려다 보이는 육교로 올라갔다. 육교를 오르는데 이번에는 속이 격하게 울렁거리면서 토악질이 올라왔다. 토할 곳도 마땅찮았다. 그걸 참느라 얼굴이 노래졌을 것이다.

  토굴 자리와 고려인들 무덤이 있는 고려인 최초 정착지로 향하는 버스에서 그 증세는 사라졌다. 더 이상 잠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몸은 멀쩡했다.

  한동안 같이 어울려 다녔던 복 보살 일행이 생각났다. 세상 아픈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해 호되게 기도하고 끊임없이 맑히는 사람들이었다. 샤만.

  복 보살은 앞에 위장병 환자가 앉으면 배가 아프다 하고 허리디스크 환자를 만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했다. 그 온갖 좋고 궂은 기운을 다 받으며, 씻어내고 맑히고 기도했다. 그들은 나보다 더 꼬리뼈가 길까?

   나는 어찌 해야 산 자와 죽은 자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극심한 졸음과 토악질 증상이 그때 그 사람들, 우슈토베역에 처음 내린 그 사람들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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