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희 시인
자동차 바퀴자국만 나 있는, 길도 없는 길을 따라 깜깜한 밤을 달렸다.
호수가 보이는 듯한 곳에서 차는 바퀴자국을 잃었다. 해발 3,000미터 높이의 여름밤은 오돌오돌 추웠다. 운전수는 호수로 흘러드는 차가운 개울에 발을 담가 깊이를 가늠해보고 개울을 건너 바퀴자국을 찾았다. 일곱 시간도 더 달려서 새벽에 게르에 닿았다.
있는 옷을 모두 꺼내 껴 입고 게르에서 뻗어 잤다. 게르 밖에서 오줌을 누는데 바로 옆에서 말이 풀을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날은 흐려 별은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 은하수가 보인다는데.
아침 게르 밖,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풍광 앞에 섰다. 수천, 수만년 동안 그대로인 듯한. 눈 들어 인공물이 없다. 눈물 나게 순정하다.
사진을 찍을 때 어떻게든 전봇대나 다리, 건물 같은 인공물이 화면에 담기지 않게 하려 애썼었다. 옛 산수화에 거대한 자연 속에 사람이나 정자 하나 쪼그맣게 그려 넣는 걸 보고는, 그래도 사람 하나쯤은 자연이라 그림이 다정해지는 걸 알았다. 나도 사진 속에 먼 사람 하나쯤 담게 되었다.
해발 삼천 미터 천산산맥에 아주 키작은 풀을 뜯는 말들과 말을 모는 개와 목동은 자연의 일부였다. 문명에 익숙해진 인간들이 거기까지 와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게르 몇 동과 아침 식사는 산수화 속 최소한의 사람 흔적이었다.
그 높은 곳에 거짓말처럼 거대한 물이 담겨 있었다. 송쿨호수.
에델바이스와 고려엉겅퀴와 이름 모를 풀꽃들이 낮게 깔린 산과 언덕에 소와 말들이 아무 목줄도 콧줄도 없이 그 너른 땅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꿈 같은 일이다. 아니, 늘 꿈꾸어왔던 모습이다. 살 것 같다. 그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숨통이 활짝 트인다.
송쿨호수에서 나오는 길, 해발 3,400미터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 높고 낮은 수많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로 흘러드는 계곡들을 보았다. 숲이 아니다, 나무도 없다, 그런데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른다.
천산산맥에만 비가 오고 눈이 온다. 중앙아시아의 모든 구름이 천산산맥으로만 모이기 때문이다. 9월이면 벌써 눈이 오기 시작해서 겨우내 쌓이고 여름에도 녹지 않는 만년설이 봉우리 높은 곳에 보인다. 봄부터 여름까지 아래에서부터 녹는 물로 천산산맥 아래 북쪽으로 강이 흐른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른다. 물!
목숨줄 물!
산맥 아래 산들은 비 맛을 거의 못 봐, 민둥산이다. 나무가 없는, 숲이 없는 산이라니! 그 꼴새가 기막히다. 그래도 한줌 풀이 자라는 산에 말과 소가 풀 뜯으러 간다.
그리고 그 아래… 가도가도 끝이 없이 황량한, 바짝 말라 빳빳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가시 투성이 키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거대한 벌판.
땅은 땅이로되 목마른 땅, 나무도 작물도 자랄 수 없는 거대한 땅.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도 땅은 땅인데… 말과 소와 토끼와 사슴이 사는 땅인데… 사람은? 말과 소와만 살 수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어디가 강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황무지색이나 연한 연두색 광활한 땅에 구불구불 짙은 녹색으로 선이 이어져 있으면 강줄기다. 나무가 자라고 주위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물 때문에 사람이 산다. 나무가 산다. 작물이 자란다.
사막 직전의 느낌인 땅도 끝도 갓도 없이 이어졌다. 스텝 지역.
물 없는 땅도 땅인가!
그 낯선 물음에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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