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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의 판필로프 공원(28인의 전사공원)의 이름은 어디서 왔나?

알마티의 판필로프 공원(28인의 전사공원)의 이름은 어디서 왔나?

김상욱 본지주필

알마티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판필로프 28인의 전사 공원(28 Panfilov Guardsmen Park)이다. 울창한 수목과 넓은 산책로, 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승천 대성당(젠코프 성당), 그리고 영원한 불꽃이 있는 전쟁 기념비가 어우러진 이곳은 오늘날 알마티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자 카자흐스탄 현대사의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은 ‘판필로프’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공원의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전설적인 지휘관이었던 이반 바실리예비치 판필로프(Ivan Vasilyevich Panfilov, 1893~1941) 소장과 그가 이끌었던 제316소총사단의 영웅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1941년 여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급히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야 했다. 당시 카자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였던 알마아타(현 알마티)에서는 카자흐인과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키르기스인 등 다양한 민족 출신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대가 창설됐다. 이것이 바로 훗날 전설이 된 제316소총사단이다.

  사단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키르기스스탄 군사위원장을 역임했던 이반 판필로프 소장이었다. 그는 엄격한 지휘관이면서도 병사들을 가족처럼 돌보는 인간적인 지도자로 명성이 높았다. 병사들은 그를 단순한 상관이 아니라 존경과 애정을 담아 ‘바티야(Batya·아버지)’라고 불렀다.

  1941년 가을, 독일군은 모스크바 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판필로프 사단은 모스크바 서북부 볼로콜람스크 방면에 투입돼 독일 기갑부대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독일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최신 전차를 앞세워 수도 모스크바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으며, 소련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건이 바로 두보세코보(Dubosekovo) 전투다. 1941년 11월, 판필로프 사단 소속 28명의 병사들이 독일군 전차부대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소련 전역에 알려지며 집단적 영웅주의의 상징이 됐다. 당시 정치지도원 바실리 클로치코프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러시아는 넓지만 물러설 곳은 없다. 뒤에는 모스크바가 있다”라는 말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다만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이 전투의 세부 내용에 대해 일부 과장이 있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실제 전투는 존재했지만, 전후 소련 정부가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영웅 서사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필로프 사단이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는다.

  판필로프 장군은 1941년 11월 18일, 모스크바 인근 구세네보 마을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중 적의 포격으로 전사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소련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사후 최고 훈장인 ‘소련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알마티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의 장녀인 발렌티나 판필로바는 제316소총사단 의무대대에서 복무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카자흐스탄에서 사회활동을 이어가며 부친의 유산을 알리는 데 힘썼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에서는 판필로프 장군을 단순한 소련의 군인이 아니라, 다민족 국가 카자흐스탄이 함께 만들어낸 공동의 역사적 자산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현재의 판필로프 공원 자체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 이곳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시절 베르니(Verny, 알마티의 옛 이름) 시절의 공동묘지 부지에 조성됐다. 처음에는 ‘푸시킨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5월 5일 판필로프 사단의 영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약 18헥타르 규모의 공원 안에는 여러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영광의 기념비와 영원한 불꽃,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건축물로 평가받는 젠코프 성당이다. 이 성당은 20세기 초 철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건립된 내진 설계 목조 건축물로, 알마티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또한 공원 남쪽에는 이반 판필로프 장군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으며, 지금도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찾고 있다.

  오늘날 판필로프 공원은 단순한 도시 공원이 아니다. 이곳은 러시아 제국 시대의 베르니, 소련 시절의 전쟁 기억, 그리고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의 국가 정체성이 겹겹이 쌓여 있는 역사 공간이다. 특히 다민족 사회인 카자흐스탄이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온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알마티 시민들이 지금도 이곳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공원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연대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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