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패권의 역사 – 1 중국·러시아 관계의 형성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유라시아 대륙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축이 끊임없이 이동해 온 거대한 공간이다. 오늘날 세계의 관심은 태평양과 인도·태평양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정치의 흐름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유라시아는 여전히 세계 질서를 결정짓는 핵심 무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동아시아와 유럽, 러시아와 중동을 연결하는 대륙의 교차점으로서, 역사적으로도 강대국들의 경쟁과 협력이 반복되어 온 전략적 공간이었다.
영국의 지정학자 할퍼드 매킨더(Halford J. Mackinder)는 1904년 발표한 「역사의 지리적 중심(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에서 유라시아의 내륙을 ‘하트랜드(Heartland)’라고 규정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하트랜드를 지배하고, 하트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World Island)을 지배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매킨더가 말한 하트랜드의 중심에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가 자리한다. 그의 이론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국제정치학에서 중요한 분석 틀로 활용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전략적으로 중시하는 이유 역시 이 지정학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유라시아를 둘러싼 경쟁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유라시아를 하나의 정치·경제 공간으로 처음 통합한 세력은 13세기 몽골제국이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중국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하나의 제국 아래 통합했고, 그 결과 실크로드는 전례 없는 안정기를 맞이했다. 동서양의 상인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대륙을 횡단할 수 있었고, 비단과 향신료뿐 아니라 화약, 나침반, 인쇄술,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대륙 전체로 확산되었다.
몽골제국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연결’이었다. 유라시아는 처음으로 하나의 경제권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동아시아와 유럽은 이전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제국이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면서 실크로드는 다시 지역별 세력권으로 나뉘었고, 유라시아는 수 세기 동안 분절된 공간으로 남게 된다.
이후 유라시아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국가는 러시아였다. 15세기 말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고, 16세기 이반 4세 시대에는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정복하며 볼가강 유역을 장악했다. 이는 러시아가 단순한 동유럽 국가에서 유라시아 국가로 변모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넘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했고, 19세기에는 중앙아시아 초원과 투르키스탄 지역을 차례로 병합했다. 당시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중시한 이유는 단순히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남하 정책을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전략, 영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계산,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광대한 초원을 확보하려는 경제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세기 후반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이러한 지정학적 경쟁의 상징이었다. 영국은 인도를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 했고,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장악해 제국의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는 소비에트연방 시기에 더욱 공고해졌다. 중앙아시아는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소련 산업화와 군사 전략의 핵심 기지로 재편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대규모 곡창지대 개발이 추진되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기지인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이 건설되었다. 중앙아시아는 모스크바의 계획경제를 뒷받침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기능했으며, 동시에 남쪽 국경을 방어하는 군사적 완충지대 역할도 수행했다.
반면 중국의 역사적 궤적은 러시아와는 달랐다. 중국은 오랫동안 농경문명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중화 질서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을 유지했다. 한나라와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를 거치며 서역과 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중국의 국가 전략은 대체로 황하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내치와 주변 질서 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청나라 시기에 이르러 신장 지역이 제국에 편입되면서 중앙아시아와의 접점은 확대되었지만, 러시아처럼 유라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대륙 전략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청 제국은 북방 유목 세력과의 충돌을 방지하고 국경을 안정시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차이는 훗날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성격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7세기 후반, 양국은 처음으로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이 아무르강 유역에 이르자 청나라는 이를 경계했고, 양국은 군사적 충돌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중국과 서구 국가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국경 조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후 1727년 캬흐타 조약이 체결되면서 양국 간 교역과 국경 관리 체계도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상황은 급변한다. 아편전쟁 이후 국력이 약화된 청나라는 러시아와 체결한 아이훈 조약(1858년)과 베이징 조약(1860년)을 통해 광대한 연해주와 아무르강 북쪽 영토를 상실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이 시기를 ‘백년국치’의 일부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확보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해 극동 전략의 거점을 마련했다.
20세기 들어 두 나라는 공산주의라는 동일한 이념 아래 일시적으로 협력했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에는 이념과 국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소분쟁’으로 이어졌고, 1969년에는 우수리강의 다만스키섬(중국명 전바오다오)에서 실제 무력 충돌까지 발생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익과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단순한 우호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양국은 때로는 협력했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서로를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자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러시아는 오랜 역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중앙아시아를 자국 안보의 핵심 공간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만나는 곳이 바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이며, 이 지역은 다시 한번 세계 지정학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유라시아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제국들이 남긴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동시에 카자흐스탄이 왜 세계 강대국들의 관심을 받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다시 손을 맞잡고 있지만, 그 협력의 이면에서는 유라시아의 미래 질서를 둘러싼 새로운 경쟁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냉전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중소분쟁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 나아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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