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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연수 후기] 2026년 전농 광전연맹 카자흐스탄 역사·농업 연수를 다녀와서

톈산의 눈물과 사막의 지평선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고, 자주외교·경제교류의 길을 묻다

10여 년 전,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해 미군기지 문제에 맞서 싸우는 일본 민중들의 조직적이고 치열한 대응을 목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패권국의 군사적 압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평화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의 모습은, 저에게 ‘자주(自主)’가 민중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주, 저는 전농 광전연맹 교육사업의 일원이 되어 카자흐스탄 연수길에 올랐습니다. 단순한 해외 농업 견학을 넘어, 오키나와에서 시작된 자주적 질문의 답을 끝없는 지평선 위에서 찾고, 대한민국의 외교와 경제교류 정책이 나아가야 할 생존의 길을 깊이 고민하게 만든 또 하나의 치열한 여정이었습니다.

 사막을 옥토로 일군 고려인의 농사 기술과 국위선양

  카자흐스탄의 대지는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사막의 지평선이 교차하는 경이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연간 강수량이 300mm에 불과한 이 척박한 건조 기후에서 어떻게 중앙아시아 최고의 곡물 수출국이 되었는지, 그 비밀은 저 멀리 만년설을 품은 톈산산맥에 있었습니다.

  고려인 선조들은 톈산산맥의 눈이 녹아 흐르는 물길을 찾아내 척박한 땅으로 끌어왔습니다. 강인한 집념과 탁월한 농사 기술로 물길을 열고 황무지를 벼농사 지대로 일구어낸 그들의 발자취는 우리 농민들에게 깊은 경외심을 주었습니다.

  선조들은 농사 기술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여를 하며 카자흐스탄 내에서 당당히 국위를 선양하고 주류 사회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크즐오르다 중심가에 당당히 새겨진 ‘홍범도 거리’를 걸으며, 저는 우리 민족이 가진 무궁한 발전 가능성과 저력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권에 따라 춤추는 역사, 식민지적 역사학계를 향한 자주적 선언

  최근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권이 탄핵되고 새로운 정권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운영되고 있지만, 주류 사회와 역사학계가 가진 굴절된 역사의식은 여전히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촛불정권(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타국 땅에 쓸쓸히 묻혀 계시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마침내 고국으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엄숙히 안장해 모셨던 감격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2023년 윤석열 정권 재임 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뉴라이트 세력들과 주류 관변학자들에 의해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고 이전을 시도하는 부끄러운 역사적 만행이 백낮에 벌어졌습니다. 정권의 입맛과 이념의 잣대에 따라 독립 영웅의 대우가 극과 극을 달리는 서글픈 자화상이었습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우리 역사학계가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과서 속 역사는 국내의 자잘한 활동이나 해외의 단편적인 전투만을 나열하는 수준에 멈춰 있습니다.

  정작 국내 독립운동과 해외 무장투쟁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되었는지, 국제관계 속에서 어떻게 연대했는지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서구 중심의 역사의식에 갇혀 제1·2차 세계대전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이나 패권국들이 저지른 역사적 행패와 만행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를 주저하고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그러나 외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서술하고,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자주적 국민이 지녀야 할 마땅한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학계의 나태함과 주류 사회의 무능 속에서, 전농 광전연맹이 추진한 ‘아시아 독립운동 역사 찾기’ 사업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국가와 학계가 이념 논쟁에 얽매여 방치한 역사의 공백을, 민중이 직접 국경을 넘어 바로 세우겠다는 자주적 역사 주권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80년, 나라 잃은 설움은 왜 아직도 진행형인가

  크즐오르다에서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님이 들려주신 강연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졌습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가 당시 강대국들의 국제정세와 안보 논리 속에서 힘없는 민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었습니다. 현재도 여느 사람들은 이 90년 전 과거의 불행에만 방점을 두고 슬퍼하거나 이념적 논쟁을 벌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연수에서 우리가 목격한 진짜 비극은 해방 후 8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포들은 독립운동가 김한 장군의 외손자이자 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한 우원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추대하는 등 고국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습니다.

  그 뜻있는 결실로 2024년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협력하여 ‘복수학위(듀얼코어)제’를 도입하고 ‘홍범도 명칭 AI 대학’을 개설하는 등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는 실질적인 지원과 연대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값진 성과들은 여전히 몇몇 개인과 단체의 눈물겨운 분투에 기대어 있을 뿐, 국가 차원의 거시적이고 전면적인 지원 체계는 여전히 미비합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어떠합니까?

   역사적 비극을 겪은 이스라엘이나 독일 같은 국가들은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을 조국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귀환법’을 제정하고, 2세, 3세를 불문하고 정식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시민권을 아낌없이 부여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독립운동을 위해서건,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동포들과 그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식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고국 땅에서조차 체류 자격 제한에 걸려 이방인처럼 숨죽여 살아야 하는 이 참담한 현실이야말로 해방 후 80년 동안 이들을 방치한 조국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입니다.

  그 씁쓸한 조국의 빈자리를 메우며, 외롭게 타국 땅에서 30여 년 동안 동포들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언덕이 되어주신 김상욱 원장님 부부의 헌신을 마주했을 때, 무한한 감사와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죄송함이 밀려왔습니다. 알마티 고려문화원에 새겨진 그분들의 30년 세월과 땀방울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부끄러워해야 할 이정표였습니다.

이재명 시대, 아시아 독립운동사 계승과 공교육 혁신을 위한 대안

  우리는 이제 탄핵 이후 새롭게 열린 이재명 정권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성과(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와 우원식 의장이 닦아놓은 실질적 교류(AI 대학 설립 등)를 디딤돌 삼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역사 주권과 동포 권리 보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대안과 방향은 명확합니다.

  첫째, 동포 후손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기초로 하는 귀환권 보장입니다. 독립운동가 동포와 그 후손들에게 이방인의 굴레를 씌우는 현행 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독일의 선례처럼, 독립운동을 위해 나라 밖으로 떠돌아야 했던 동포 후손들에게 정식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적 대전환이 이재명 시대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아시아 독립운동사’의 공교육 의무화 및 주류 학계 혁신입니다. 서구 중심 사관과 단편적 사실 나열에 그치는 공교육 역사 교과서를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한반도 안의 독립운동과 아시아 전역(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의 무장투쟁이 어떻게 국제 정세 속에서 연대하며 독립을 쟁취했는지를 입체적으로 기술하도록 주류 학계를 강하게 견인해야 합니다.

  셋째, 농업·기술·교육을 매개로 한 실질적 아시아 외교 교류 확대입니다. 크즐오르다 국립대와 서울과기대의 협력 모델을 카자흐스탄 전역, 나아가 아시아 주요 대학과 기관으로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독립 영웅들의 이름을 딴 인재 육성 교류 사업을 국가 정책으로 전면 수용하고 예산을 확대 지원해야 합니다.

미·나토 추종 외교를 넘어 ‘아시아 중심의 자주외교·경제 교류’로

  이 모든 역사 바로 세우기는 결국 대한민국의 자주적 외교·경제 정책의 대전환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국가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견문이나 외교를 등한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살길은 패권국 미국의 눈치를 보며 그 하위 동맹인 유럽 국가들과의 이해관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의 이익이나 안일한 권력 유지에 취해 나토(NATO)와 발을 맞추며 북·중·러와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무기 장사꾼 식의 외교는 국익을 파멸로 이끄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국민과 국익을 위한다면 외교와 경제 협력의 중심축을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확대로 과감히 돌려야 합니다. 사막을 뚫고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인적·물적 교류를 넓히고, 무엇보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막힌 땅길을 열어야 합니다. 북한과의 관계를 풀고 북·중·러와 밀접한 외교 관계를 설정해야만, 우리가 육로와 비행기, 배를 타고 아시아 대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세계 최대의 아시아 시장과 동포사회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 원장님이 강조하신 “이념이나 사대가 아닌 국익과 국민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안보 전략”의 실체일 것입니다.

맺으며

 『한인일보』 게재 면을 통해 우리 연수단의 발자취를 상세히 기록해 주신 김상욱 원장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전농 광전연맹의 해외연수 두 번째 참가자로서, 저는 조직이 의도하는 바를 세세히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10년 전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보았던 자주적 투쟁의 불씨가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구어낸 고려인 선조들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황무지를 개척했던 선조들의 피땀 어린 역사가 먼 훗날 대중에게 잊힌 역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정당하게 기억하고 팩트를 기반으로 기록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 카자흐스탄 연수는 톈산산맥의 만년설 위에서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한 감동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자주적 역사와 외교 정책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 각성의 현장이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동포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원장님 부부의 노고를 기억하며, 조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포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자주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앞으로도 전농 광전연맹이 실천적 선봉으로 앞장서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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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atykim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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