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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36]

[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36]

미국과 카자흐스탄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유라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카자흐스탄에게 미국은 가장 먼 강대국이다. 그러나 이 거리는 물리적 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와 중국이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현실이라면 미국은 선택 가능한 전략적 변수이며, 바로 그 점에

서 이 나라의 외교 구조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다.

  카자흐스탄과 미국의 관계는 독립 직후부터 전략적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독립 이전부터 이미 미국과의 관계를 모색했고 독립 직후 방미를 통해 에너지와 외교 협력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카스피 해 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미국 기업들의 진출은 양국 관계를 일반적인 외교를 넘어 구조적 협력 관계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관계는 양국 간의 문제를 떠나 유라시아 전체의 권력 구조와 연결된다.

  중앙아시아는 본질적으로 ‘완충지대’이다. 이 지역은 유럽, 러시아, 중국, 중동을 연결하는 교차점인 동시에 어느 한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영토와 자원을 가진 국가로서 사실상 유라시아 내륙의 중심에 위치한다.

  최근 연구들은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는데, 카자흐스탄은 중간 국가라는 한정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버퍼이자 커넥터’로서, 강대국 간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완충지대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 전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앙아시아를 단순 협력 지역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보고서와 전략 문서에서는 중앙아시아가 러시아 의존적인 수출 구조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경제·에너지 경로를 형성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언급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최근 외교 움직임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에너지와 광물, 물류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만약 카자흐스탄이 명확하게 친미 노선을 선택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첫째,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략적 붕괴에 가까운 충격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전통적으로 자신의 영향권으로 인식해 왔다. 이 지역은 남쪽 국경을 안정시키는 완충지대이자 경제·군사적으로 연결된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의 중심에 있는 카자흐스탄이 미국 쪽으로 기울 경우 러시아는 남쪽 방어선 자체를 재설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이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전략적 깊이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이 지역에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러시아는 직접적인 압박을 받게 된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군사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러시아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둘째, 중국 입장에서도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서쪽 안전지대’로 인식한다. 신장 지역의 안정과 일대일로의 핵심 경로가 모두 이 지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이 미국과 긴밀하게 연결될 경우, 그 영향은 중국의 대륙 전략 전체에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 특히 에너지와 물류 측면에서 중앙아시아의 중요도는 더욱 크다.

  중앙아시아는 중국이 러시아를 우회하여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인 동시에 유럽으로 향하는 육상 통로의 핵심이다. 만약 이 경로가 미국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면 중국의 전략적 자율성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셋째, 더 중요한 변화는 ‘구조적 경쟁의 전환’이다. 중앙아시아는 이미 러시아, 중국, 미국, 유럽이 동시에 관여하는 다자 경쟁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경쟁은 균형 상태에 가까웠다. 즉, 어느 한 국가도 완전히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서로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과 같은 핵심 국가가 특정 진영으로 이동할 경우 이 균형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카자흐스탄은 참여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국가’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왜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이 친미 노선을 명확히 선택하는 순간, 러시아와 중국 모두 강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압박, 정치적 영향력 행사, 심지어 안보적 긴장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선택의 자유는 존재하지만 그 대가는 매우 크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은 한 가지 전략을 유지해 왔다. 기울지 않는 것. 미국과 협력하지만 동맹이 되지 않고 러시아와 협력하지만 종속되지 않으며 중국과 협력하지만 의존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카자흐스탄 외교의 핵심이다.

  결국 이 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뉴 그레이트 게임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선택지가 하나로 줄어드는 순간이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은 스스로를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균형 그 자체로 만들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카자흐스탄은 또 하나의 지정학적 긴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다. 전쟁의 무대는 중동이지만 그 파장은 결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 물류, 외교 질서, 금융 흐름까지 다양한 영역을 통해 그 영향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카자흐스탄은 다시 한번 자신이 놓인 위치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공식 반응은 예상대로 신중했다. 어느 한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고 대신 일관되게 ‘긴장 완화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이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유지해 온 외교 전략의 연장선이다. 카자흐스탄은 국제사회에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며 유엔과 다자 협력 체계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특정 국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태도는 카자흐스탄 외교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 준다. 이 나라는 갈등을 규정하기보다 관리하려 하고 편을 가르기보다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도덕적 중립이라기보다 구조적 현실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이 점은 카자흐

스탄 언론의 보도 방식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도 러시아와 서방, 카자흐스탄의 시각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러시아 언론은 이번 충돌을 비교적 명확한 프레임으로 해석해 왔다. 보도의 출발점은 대체로 ‘미

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군사작전’이다. 전쟁의 책임을 미국 측에 두는 서술구조가 반복되며 이후의 이란 대응을 ‘보복’이라는 맥락 속에서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군사적 비용과 전략적 부담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단기간에 막대한 군사비가 소요되었고 장기전으로 갈 경우 미국이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반복되었다.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강조하는 서사를 택한 것이다.

  반면 서방 언론은 전혀 다른 프레임을 제시했다. 이란의 핵 개발과 지역 내 군사적 활동을 위협 요소로 규정하고 이번 군사 행동을 ‘억제’ 또는 ‘방어’의 맥락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전쟁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카자흐스탄 언론은 제3의 길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보도는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확전 가능성’, ‘지역 안정성’, ‘경제적 파장’과 같은 요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전쟁의 도덕적 평가보다 그 결과가 가져올 현실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보도의 관심사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 이란에 체류 중

인 자국민의 안전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물류 경로가 차단될 가능성은 없는지와 같은 문제들이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이는 전쟁을 ‘관찰하는 국가’의 시각이 아니라 ‘영향을 받는 국가’의 시각이다. 이러한 차이는 언론 스타일에

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카자흐스탄이 처한 지정학적 현실에서 비롯된 구조적 선택이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중국, 미국이라는 세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이다. 여기에 유럽연합, 튀르키예, 이란, 중동 국가들까지 더해지면 외교 환경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 가운데 어느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다른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멀티벡터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방침에 가까웠다. 이 전략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가들은 종

종 어느 한 편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압박 속에서도 가능한 한 중립적 위치를 유지하려 해 왔다. 이는 지극히 계산된 거리 두기였다.

  이란과의 관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라시아 내륙국인 카자흐스탄에게 이란은 남쪽으로 향하는 중요한 출구이다. 카스피 해를 거쳐 이란 항구로 연결되는 물류 경로는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는 대안적 루트로서, 또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상대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이 카자흐스탄 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카자흐스탄이 받게 될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이란 항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물류 흐름이 차단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수출입 구조는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 역시 중요한 변수이다. 유가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수익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글로벌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과 제재 문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국제 제재가 강화될 경우, 특정 국가와의 거래는 금융 시스템을 통해 제한될 수 있어, 기업 활동과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이처럼 카자흐스탄에게 이번 전쟁은 ‘먼 지역의 분쟁’이 아니라 물류, 에너지, 외교, 경제가 모두 연결된 복합적 위기이다.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외부 환경의 변화는 내부 정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카자흐스탄의 정치 개편 논의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국가 운영의 효율성과 제도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권력 구조의 재편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개헌의 주요 내용은 비교적 명확하다. 기존의 양원제를 단원제로 통합하고 부통령직을 신설했으며 대통령의 인사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권력이 재구성되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통령은 대법원장, 중앙은행 총재, 정보기관 수장 등 핵심 권력 기관의 인사를 직접 임명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의회가 이를 반복적으로 거부할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행정명령으로 통치할 수 있는 권한까지 얻었다. 형식적으로는 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한 제도 개편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의 권력 집중이 강화된 구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답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뉴 그레이트 게임의 시대는 불확실성과 경쟁이 동시에 확대되는 시대이다. 강대국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중간에 위치한 국가들은 더 빠르고 일관된 결정을 요구받게 된다.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는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가의 대응 속도와 정책 일관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권력의 집중은 위험을 동반하는 동시에 위기 대응능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일차원적인 평가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압박 속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선택이라는 시각이 합당할 것이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지금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외부의 전쟁과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의 제도와 권력 구조이다. 당연히 이 두 영역은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외부 환경이 내부 구조를 규정하고 내부 구조는 다시 외부 대응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전쟁은 이러한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유라시아 전체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른 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카자흐스탄은 다시 한번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여전히 같은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편을 선택하기보다 균형을 유지하고 충돌을 확대하기보다 관리하려는 전략이 그것이다. 멀리서 보면 중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것은 가장 적극적인 생존 전략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전략이 뉴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카자흐스탄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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