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인의 세계관과 종교

카자흐스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어려운 지점은 제도나 정책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깊은 곳,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왜 이렇게 다른 선택을 하는지, 왜 때로는 모호해 보이는 태도를 유지하는지, 왜 서두르지 않는지. 이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카자흐인은 어떤 세계를 살아왔는가.
그 세계는 초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계절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삶, 고정된 중심이 없는 공간. 초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고의 틀을 만든 환경이다. 이곳에서 세계는 선이 아니라 흐름으로 인식된다. 경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소유보다 관계가 중요해진다.
초원의 삶은 빠른 결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급한 결정이 위험하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고, 무리한 선택은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카자흐인의 사고방식에는 기다림과 관찰이 깊이 배어 있다. 판단은 즉각적으로 내려지기보다, 충분히 숙성된 뒤에 이루어진다.
이 태도는 오늘날 정치와 외교에서도 반복된다. 카자흐스탄이 급진적인 선택을 피하고, 모호해 보일 정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결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초원에서 형성된 위험 관리의 본능에 가깝다.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는 감각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관계 중심성이다. 초원에서는 혼자 살아남기 어렵다. 이동과 생존은 언제나 공동체의 문제였고, 관계는 자산이었다. 그래서 카자흐 사회에서는 법이나 계약보다 체면과 신뢰가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장치였다.
이 문화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공식적인 규칙이 존재함에도, 실제 결정은 비공식적 합의와 조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는 이를 비효율로 보기도 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정면 충돌보다 우회와 조정이 선호되는 이유다.
자유에 대한 감각 역시 독특하다. 카자흐인의 자유는 개인주의적 자유와는 다르다. 그것은 속박되지 않을 자유, 다시 말해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는 상태에 가깝다. 특정한 틀에 완전히 묶이지 않는 것,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 이 자유관은 국가의 외교 전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종교와 전통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슬람은 카자흐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지만, 배타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신앙은 공동체의 일부이지만, 국가 운영의 절대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필요했고, 이 유연성은 종교적 실천에서도 유지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시화와 글로벌 문화 속에서도, 카자흐 사회에는 여전히 느슨한 공동체 의식과 관계의 언어가 살아 있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리듬은 남아 있다.
물론 변화도 분명하다. 젊은 카자흐인들은 더 빠르고, 더 직접적이며, 더 세계화된 감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초원의 기억과 글로벌 도시의 언어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갈등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가 정체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카자흐스탄은 그래서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언제나 중간 상태에 있다. 전통과 현대, 초원과 도시, 자율과 국가,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외부에서는 이 중간성이 모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호함이야말로, 이 나라가 오랫동안 살아남아온 방식이다.
신앙과 종교
일반적으로 전통적 민간 신앙과 종교의 관찰을 통해 카자흐인들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을 이해하고 문화의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대자연과의 융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유목 생산양식과 씨족-부족 체제의 사회조직에 근거하여 카자흐 사회에는 토착적인 조상숭배, 천신사상 및 샤머니즘 등의 다양한 종교적 양태가 역사적 상황과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중첩적으로 표출되었다.
카자흐인들은 조상숭배를 통해 후손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자연재해 시에 조상영혼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특히 18세기에 이르러서도 전쟁 시에 카자흐인들은 ‘알라’ 보다는 ‘아블라이칸 등의 영웅적 조상의 이름을 상기하며 조상으로부터 직접적 은총을 기대하였다.
또한 가축에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축을 조상의 무덤으로 데리고 가서 불로 정화하는 관행도 보존되었다. 조상숭배는 영혼의 영원성에 관한 애니미즘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사후 순장을 하며, 사망 이후 3일제, 7일제, 40일제, 100일제 및 1주기 제례를 행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카자흐인들은 자연의 힘과 신비한 현상을 주관하는 존재, 특히 카자흐인들의 전통적 네 가지 가축들을 보살피는 각각의 주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양은 숄판아타, 말은 캄바르아타 등이 주인이라고 여기고 그들에게 가축의 건강을 기원했다.
한편 이슬람 전파 이전까지 카자흐인들의 정신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신앙체계는 천신사상이었다. 천신사상은 유라시아 유목생산 문화권의 대표적 신앙체계로 번영기는 투르크(돌궐) 제국 시기다. 고대 유목제국의 문화적 통일성을 위한 토대가 된 천신사상은 일신론적 믿음 체계로 이후 이슬람의 확산에 따라 천신과 알라가 동의어가 되면서 카자흐인들이 표면적으로 이슬람을 수용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천신사상과 함께 카자흐 유목생활과 정신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문화체계는 샤머니즘이다. 카자흐의 무당인 박스는 영적세계와 인간집단 간의 중개자로 영적인 능력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이자 주술사이며 영혼의 인도자인 동시에 문학가이자 예언가였다.
카자흐의 무당은 전통 악기 코브즈를 연주하며 굿을 통해 환자의 몸에서 병균과 고름을 꺼내 치료하기도 하고 맨발로 불 위를 걸어 다니며 영적인 능력을 증명하였다.
내가 몇 년 전,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때 만난 한 여성 무당은 자신은 오직 코브즈 연주를 통해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운명을 알려주며, 또 코브즈 연주를 통해서 환자를 치유해준다면서 시범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카자흐 사회에서는 신성한 나무에 헝겊을 매어 소원을 빌거나 병자의 인형을 만들어 치료하는 등의 무속적 신앙행태들이 널리 확산되었다. 아울러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불을 가정의 수호자로 신성시하며 액운의 방지와 청결 및 치료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카자흐 유목민들이 동영지에서 하영지로 출발하면서 불을 피워 액운을 씻는 행위나, 아이의 요람을 불로 정화하여 악귀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샤머니즘적 행태의 하나이다.
카자흐인들은 스스로를 무슬림으로 생각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지식과 실천은 상당히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카자흐스탄에서의 이슬람은 종교적 기능보다는 생활 규범이자 전통문화의 중요 요소로 간주되고있다. 아울러 카자흐스탄의 이슬람은 유목생활과 관련된 천신사상, 조상숭배 및 샤머니즘 등의 전통적 민간 신앙과 결합된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카자흐인들은 식사 후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일부는 금식을 지키기도 하지만 이는 종교행위라기보다는 조상들의 전통을 고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를 두고 ‘카자흐스탄은 무늬만 이슬람’이라는 문장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이러한 ‘생활 이슬람’ 전통은, 이슬람의 정치세력화에는 반대하였지만 민족문화 요소로 이슬람을 유지하였던 소비에트 체제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카자흐인들은 병을 고치거나 저주를 풀어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고 신봉되는 무당과 성소들을 자주 방문하며 재액을 피하고자 주술적 의미가 담긴 부적을 갖기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인들에게 이슬람은 적어도 출생, 할례, 결혼, 장례 등에서 의례적 중요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인들의 전통문화 부흥은 이슬람 부활로 이어져 이슬람 사원을 찾고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카자흐인이 늘어남에 따라 이슬람은 카자흐인들의 전통 종교로 정착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고대로부터 토속적 민간 신앙과 함께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세계의 종교들이 서로 교류하고 융합된 지역이다. 따라서 카자흐인의 정신문화는 토착적 민간 신앙을 핵심으로 하여 그 위에 다양한 유입 종교의 잔재와 이슬람이란 표피가 둘러싸고 있는 중층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오늘날 다민족 다종교 사회인 카자흐스탄에서 민족 및 종교 간의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는 카자흐스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절대적인 요소라 할 것이다.(김상욱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