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희 시인
이식쿨 호수는 건너뛰기로 하자. 제주도의 세 배 크기라는 해발 1,600미터 천산산맥 한가운데 자리한 바다 같은 호수, 물 너머 멀리 천산산맥이 보이고 아침 숙소에서 창으로 뒷산에 만년설이 보이는 곳, 유람선을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아가 수심 700미터 깊이 그 맑은 물에 풍덩 빠졌던 장면도.
이름난 휴양지가 되어가는, 호텔과 콘도와 식당 들이 들어서고, 신성함은 쪼그라들고 자본의 놀이터가 되어가는 꼴에 마음이 우울해져서. 유람선을 띄워 놀게 해준 한 가족, 형제로 보이는 두 소년의 안내를 받을 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그 소년들의 낯빛 때문에. 자랑하지 않기로 하자.
그러나 해변 아니 강가 백사장에서 우리와 함께 춤을 추던 춤사위가 부드럽고 나긋나긋 아름답던 히잡을 쓴 키르기스스탄 여인, 그 여인이 사주었던 크나큰 옥수수와 그 정은 잊지 않기로 하자.
국경까지 달리는 내내 차창에 가득차 있던, 만년설 인 산을 배경으로 맑고 뜨거운 햇살 아래 푸르게 빛나는 호수와 초록의 초지는 그림처럼 남겨두기로 하자.
국경.
키르기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에 초소와 차단기 정도만 장난감처럼 세워져 있는 육로 국경.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처음이다. 그 광활한 산하에 둘러진 가느다란 철책선이 허망하고 얼척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여전히 말들은 개념없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맹금류 큰 새들에게 그 장난감 같은 설치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인간이 가장 하빠리였다.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이라는 선의 어거지와 엉터리, 그 한심한 짓거리는 그러나 현실에서 누군가가 조이고 푸는 족쇄로 막강하게 작동했다. 아. 인류여!
그렇게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몇 발자국 걸어서. 국경을.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 말고 현지인인 듯한 사람들의 생김새는 다양했다. 서역의 얼굴, 우리랑 거의 닮은 얼굴, 섞인 얼굴…
그늘로만 들어가면 그리 덥지 않아, 여름 한낮의 땡볕을 피해 국경을 지키는 인원들 숙소 같은 건물이 드리워놓은 북동쪽 그늘에 들었다. 버스는 한 시간 뒤쯤 온단다.
현지인 한 가족도 그늘로 들어왔다. 젊은 부부와 딸 셋. 여행객 행색이었다면 한국에서 온 사람들로 착각할 만큼 우리랑 놀랍도록 닮았다. 특히 가운데 딸은 초등학교 때 내 모습과 거의 똑같다. 작고 마르고 까만 아이.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이, 우리가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오래된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박하고 투박하고 수줍은 낯빛, 순진하고 선하고 착한 표정. 1960년대 이전에 찍힌 사진들 속 우리 얼굴.
아, 그토록 그리워했던 우리 얼굴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그렇구나, 우리는 여기에서 왔구나! 우리는 같이 살았었구나. 본래 우리의 얼굴을 이들이 아직 갖고 있구나.
오래 전에 헤어진 사촌이나 조카를 만난 듯 반갑고 느꺼웠다. 가족 사진 찍듯 그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옆으로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보였다.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 과자, 음료수 등속이 헐렁하고 조악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쪽 테이블에 두 큰애기가 앉아 있었다. 판매원인 모양이다.
또 놀란다. 어려서 보았던, 나물 캐러 다니던 큰애기들 얼굴과 똑같다. 시골에서 올라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리 젊은이들 얼굴 그대로다.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고 싶다.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연다.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아 몇 번씩 실패한다. 안타깝다. 얼굴이 좀 통통한 큰애기가 일어선다.
아직 카자흐스탄 돈이 없다.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있냐고 손짓 발짓으로 묻는다. 큰애기는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또 묻는다. 크레디트 카드는 되냐고. 안 된단다. 큰애기가 그냥 나오는 나를 따라온다. 뭔지 아쉽고 안타까운 표정, 그러나 여전히 활짝활짝 웃으며 따라온다. 뭔가를 나누고 싶다, 말이 아니면 느낌이라도. 둘 다 그렇다. 마치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다. 똑똑히 보고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규정상 사진은 찍을 수 없단다. 그래도 그니는 문밖으로 따라나와 나와 얼쩡거렸다.
버스가 왔다. 올라탔다. 그니는 나를 향해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자리에 앉고 버스는 출발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연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일행 중에 아픈 사람들과 아름다운 사람들을 노래하는 가수가 있었다. 모두 모여 둘러 앉은 첫날 그는 하모니카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버스가 국경을 출발한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기름을 넣기 위해 들른 벌판의 첫 마을 주유소에서 가수는 국경 그 그늘 벽에 기타를 두고 왔음을 실토했다. 모두 기타를 찾으러 돌아가자 했다. 다시 국경으로 달렸다.
기타는 제 자리에 없었다. 내가 찍은 사진에만 그 건물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기타가 찍혀 있었을 뿐.
우리 모두는 손짓발짓해가며 기타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국경 가게의 그 큰애기도 밖으로 나와 거들었다. 아, 나는 다시 그니를 본 것이다. 버스 안에서 열린 문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허락도 없이. 나는 기어이 그니를 담아왔다.
그리운 얼굴, 내가,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얼굴, 내 형제자매의 얼굴을.
우리는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이 척박한 땅에서 간절한 비, 비가 철철 내리는 땅을 찾아, 오래 전 ‘우리’는 걸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말간 해가 떠오르는 곳, 말갛게 씻긴 해가 떠오르는 곳, 해가 지면 달이 천천히 떠오르는 곳, 깨끗이 씻은 정갈한 달빛이 솟아오르는 곳, 동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더러 더 이상 갈 수 없어 그 어디쯤 주저앉고 더러는 끝내 호기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용기 있고 영민한 지혜로 끝까지 걸었을 것이다, 누대에 걸쳐.
바이칼 어디쯤으로도 몽골 어디쯤으로도 갔다가 만주 벌판, 연해주까지도 갔을 것이다.
드디어! 압록강도 두만강도 건너 한반도로 내려오다 ‘우리’는 드디어 숲이 무성한 산과 물이 흘러넘치는 대동강과 거대한 물줄기 한강을 만나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금강, 영산강 그 너른 들과 풍요로운 땅에 닿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 우리는 그렇게 여기에 왔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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