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희/시인
우슈토베 역에서 멀지 않은 고려인 최초 정착지 바슈토베, 아주 먼 산과 광활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섰다. 기가 차다. 이 황량하고 얼어붙은 땅에 초겨울에 와서 토굴을 파고 한겨울을 났다니!
그나마 물기가 닿은 곳은 갈대와 잡초만 무성했단다. 갈대를 베어다 토굴에 덮고 추위와 굶주림에 꺾인 여리고 어린 목숨들을 그 땅만큼 황량한 가슴에 묻고…
그때, 중앙아시아에 살던, 농사가 뭔지도 모르고 자연이 준 대로 말과 소와 양을 몰고 다니던 사람들은, 자기네와 참 닮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 땅에 던져져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을 때 어떻게 했을까? 나 몰라라 했을까? 그 착하고 순한, 천심(天心)을 지닌 사람들이 모른 채 했을 리 없다. 그 사람들에게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이다.
내 짐작이 맞았다. 내 물음에 김 교수는 그때 고려인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절망은 사람을 죽인다. 희망을 찾을 수 있으면 산다, 살아야 하는 목숨들은 살 궁리를 했으니, 눈앞에 보이는 그 메마르고 팽개쳐진 땅도 땅은 땅이었다.
조선에서 포한졌던 땅. 내 땅 한 뙈기 없어 일년 내내 농사 지어놓고도 소작료로 열에 일고여덟 빼앗기고 생떼같은 새끼들이 배고파 울던 조선. 그나마 남은 것조차 또 나랏님이 이래저래 뜯어가고…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조오으을까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소중하고 귀중한 우리땅은 어디에~~”
노래를 불렀다.
더러는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고 더러는 만주로 연해주로 땅을 찾아 내 나라를 떠야 했다.
그런데 땅, 그 간절한 땅이 있다. 이토록 드넓은 땅이 있다. 땅이 있으면 산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땅은 땅이로되 물이 없다. 물이 있어야 벼를 길러 나락을 거둘 것 아닌가. 쌀이 있어야, 밥을 먹어야 살 것 아닌가.
강은 멀다. 아무리 멀어도 물을 데려와야 한다. 수로를 파야 한다.
그들은 50km도 넘는 수로를 팠다. 오면서 보았던 물길들은 그들이 그때 팠던 수로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만들었던 논, 푸른 논자리가 보였다.
‘대한민국 카자흐스탄 우호 공원’을 만들면서 세운 거창한 기념비에는 무식하고 교활한 자본가들 이름이 생색을 내고 있었고 정작 그때 그 “최초 정착지” 토굴은 뭉개버려 사라졌다. 엉뚱깽뚱한 흙무덤만 대신하고 있을 뿐.
언덕 아래 수많은 고려인 무덤 밑에 쓰레기가 나뒹구는, 움푹 패인 넓은 구덩이가 있었다. 후손들의 행태에 침 튀기며 열받던 김 교수의 설명이 아니었으면 그곳이 진짜로 쓰레기 매립지인 줄 알 뻔했다. 그 자리는 그때 그 사람들이 세운 학교 자리였다.
[범도]를 쓴 소설가 방현석이 말한다.
“범도를 쓰느라 조사 취재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한결같은 현지인들의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참 이상했다. 마을만 만들면 가장 먼저 학교를 지었다. 세끼 먹기도 어려운데,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좋은 건물로 짓는 것이 학교였다.’”
몸만 살아 있으면 산 것인가, 이 혹독한 삶을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낮의 고된 몸뚱이를 다시 일으켜 우리 말과 글로 공부를 했고 삶에 쓰러지기 않기 위해 모여서 우리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 홍범도 장군도 같이 연해주에서 이주할 때 거기 있던 ‘고려극장’을 뜯어와 여기에 다시 세웠다는 전설 같은 얘기는,
그만큼 ‘고려극장’을 중히 여겼던 장군의 뜻과 우리 가락과 신명을 잃어버리면 얼이 빠져 살아도 산 것이 아님을 아는 ‘우리’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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